회초리 맞으며 독하게 배운 춤
세상 뜬 장금도·유인선 명인 위한
‘몌별 해어화’ 공연 20일부터 선봬
세상 뜬 장금도·유인선 명인 위한
‘몌별 해어화’ 공연 20일부터 선봬
이 시대 마지막 예기인 권명화 명인이 12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 마당에서 소고춤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한구 작가 제공
기교 없이 묵직·단순한 춤 전수…
피는 못 속인다고, 손녀도 춤 춰요” 12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권 명인과 진 이사장을 함께 만났다. 권 명인은 무엇보다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 당시 예기는 대학원 이상 공부를 한 사람과 비슷했지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구로 피란을 갔다. 피란 간 집 앞이 대동권번이었고,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사로잡혔다. 16살 무렵 아버지 도장과 월사금을 훔쳐 권번에 등록하고 춤을 배웠다. 기생이 저물던 시대에 권번에 들어간 그는 춤을 배운 지 6개월 만에 무용대회에서 승무를 춰 최우수상을 받았다. 권번 스승 박지홍(1889~1958)은 그를 수양딸로 삼고, 춤과 소리를 가르쳤다. 권 명인은 인력거 타고 요릿집에 가서 춤 한판, 소리 한가락 뽑아내기보다 스승을 따라 춤의 전승을 도왔다.
12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왼쪽)과 마지막 예기 권명화 명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한구 작가 제공
승무를 추는 권명화 명인.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키는 작은 할마시가 부풀어올라
무대 장악하는 힘 보시게 될 것” 박지홍류 춤의 마지막 전승자인 그는 제자 양성에도 적극적이다. 서울, 부산, 대구를 기차 타고 오가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권 명인이 말하는 박지홍류 춤은 “기교를 안 부리고 묵직하고 단순”하다. “‘야, 이놈들아. 손을 천금을 세면서 올려라(천번을 세면서 손을 천천히 올리라는 뜻)’ 했던 스승의 말을 난 지금도 귀에서 놓지 않고 있어요. 선생님 뿌리를 안고 내가 연구를 하면서 제자들에게도 춤을 가르치는 거지.” 그는 현대화한다면서 전통에서 비껴난 요즘 춤과 춤꾼들한테 아쉬움이 많다. “우리는 장구를 치고 구음하면서 춤을 했는데 요즘은 녹음테이프 탁 틀어놓고 춰요. ‘얼쑤’ ‘좋다’가 들어가야 하는데 음악은 음악대로 돌아가고, 춤은 춤대로 하니까. 소고 할 때, 살풀이 할 때 구음(춤을 반주하는 입으로 내는 소리)도 다 다르거든. 구음이 없으면 춤이 맛대가리가 없어.” 권번 시절 소리를 배우면서 목이 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똥물까지도 마셨다는 그는 여전히 춤추는 게 좋다고 했다. “이제 철 들어 춤맛을 알고 빛 보려고 하니까 나이가 많아.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 한 춤은 계속 춰야지. 피는 못 속인다고 우리 딸과 손녀도 춤을 춰요. 딸에겐 내가 배운 걸 다 가르쳤어.” 이번 ‘몌별 해어화’ 공연은 권 명인의 소고춤에 앞서 국수호의 승무, 김경란의 교방굿거리춤, 정명희의 민살풀이춤 등이 무대를 채운다. 진 이사장은 “장금도 선생이 올해 초 돌아가시고 이제 예기는 한분 남았는데 이분도 그냥 보내드릴 수 없는 것 아니냐”며 “키는 작은 할마시가 솜에 물 탄 것처럼 부풀어 올라 무대를 장악하는 힘을 보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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