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 아들과 점점 몸이 아파지는 아빠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킬 미 나우>에서 섬세한 연기로 화제를 모으는 배우 윤나무. 그를 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와 선글라스 개쩐다.”
“안 돼. 조이는 목 가누기 힘들어. 모자 써.”
“싫어. 모자 구려. 선글라스 쓸 거야.”
선천성 지체장애 조이와 그를 돌보는 아빠 제이크의 대화다. 아빠는 온몸이 마비되어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는 조이가 행여 다칠까 아이처럼 모든 걸 챙기는데, 17살 조이는 그런 아빠의 보호가 부담스럽다. “나도 이제 어른이야. 나도 독립하고 싶다고!”
서울 세종문화회관 에스(S)씨어터에서 7월6일까지 선보이는 연극 <킬 미 나우>의 한 대목이다. 장애인을 불안하고 불안정한 존재, 그래서 비장애인이 보호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시선에 한 방을 먹인다. “나도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조이의 외침처럼, 연극은 장애인의 성과 주체성 등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고민을 관객에게 토로한다. 2013년 캐나다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미국, 영국 무대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2017년에 이어 세번(삼연)째다.
멀게는 <말아톤>부터 최근의 <나의 특별한 형제>까지 장애는 드라마와 영화, 공연에서 흔한 설정이지만, 중증 지체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눈앞에서 생생하게 봐야 하는 연극에서는 더 그렇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온몸을 비틀며 대사를 치는 모습을 보기가 불편하다는 관객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킬 미 나우>는 불편함이 아닌 유쾌함과 묵직한 메시지를 동반한다. 조이는 “개쩐다”처럼 10대들의 일상용어로 대화하고, 야한 영상을 보기 위해 친구와 함께 태블릿 암호를 풀려고 머리를 싸맨다. 장애라는 시선을 거두면 조이는 또래들과 다르지 않다. <킬 미 나우>에선 조이의 자위를 도와주는 기계 이야기 등 실제 지체장애인들이 겪는 성적인 문제도 에둘러 가지 않고 정공법으로 다루는 점이 놀랍다. 영화 <우상> 등에서 언급된 적은 있지만 흔히 외면해왔던 문제들이다.
“장애인의 성·안락사 공론화에 일조하는 마음으로 연기 의욕 불타”
연극의 메시지가 심장을 파고든 데는 배우의 역할이 컸다. 초연 때부터 줄곧 조이를 맡은 윤나무(34)다. 5일 대학로에서 만난 윤나무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체장애를 가진 관객이 어떻게 볼까, 이걸 해도 되나, 고민하는 게 그들을 더 불편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게 자연스러울 거라 믿었어요.” 그래서 대본에는 ‘전신 마비이고 손가락으로 뭘 찌를 수 있는 정도’로 나와 있었지만, 온몸이 마비됐다면 성대도 마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 대사톤도 바꾸었다. 특히 “신체적인 것보다 조이의 마음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조이는 무슨 생각을 갖고 있을까, 어떤 눈을 하고 있을까. 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이보다 더 중증 장애인분이 초연 때부터 계속 보러 오시는데, 잘했다고 얘기해주세요.”
지체장애 연기는 너무 힘들어 많은 배우가 꺼린다. 중간중간 끊어가는 영화, 드라마에 견줘 생방송인 연극은 갑절 이상 신경이 곤두선다. 윤나무는 손가락이나 목의 꺾임 등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쓰며 조이를 표현한다. “그래서 무대 뒤에서 몸을 계속 풀어줘야 해요. 초·재연 때는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특히 몸에 쥐가 많이 나더라고요.” 머리를 삭발하고 몸치인 그가 탭댄스를 연습(<로기수>)하고,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자폐아(<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등 늘 연기 의욕을 부추기는 작품을 해온 윤나무에게도 조이는 힘들었다.
그래서, 윤나무의 세번째 출연은 의외였다. 2011년 연극 <삼등병>으로 데뷔한 그는 2016년 <낭만닥터 김사부>로 드라마를 시작해 2017년 <의문의 일승>, 2018년 <친애하는 판사님께>를 거치면서 ‘연극계 아이돌’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배우로 영역을 확장했다. 드라마 <배가본드>(에스비에스)와 <좋아하면 울리는>(넷플릭스)이 방영을 앞두고 있고, 새 드라마 촬영도 시작했다. 한창 잘나가는데 굳이 몸과 정신이 모두 힘든 조이 역을 맡아야 했을까? 윤나무의 대답은 명쾌했다. “이 작품이 장애인의 성이나 안락사 등의 문제가 공론화되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잘 보이지 않지만 찾아보면 우리 주변엔 조이 같은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가 언제 장애를 갖게 될지 모를 일이기도 하고요. 이 공연을 보고 장애인분들에 대한 인식이나 각자의 삶을 되짚어보면 좋겠어요.”
그는 “지금 이 시대에 이 작품이 왜 필요한가,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킬 미 나우> 역시 관객들에게 묻는다. 제이크가 조이를 보호하는 데 급급했던 것처럼 당신들도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아닐까? 윤나무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연극의 메시지는 계속 유효할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이야기예요.”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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