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스비에스)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자막으로 웃음을 유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제작진은 “그런 의도는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아픈 역사를 패러디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인다.
<런닝맨>은 2일 ‘런닝맨 굿즈 제작 레이스’를 방송했다. 논란의 자막은 출연자들이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등장했다. 출연진이 추리를 하던 도중, 김종국이 “노란팀은 1번에 몰았을 것 같다”는 말을 하자 그 순간 전소민이 사레 들린 기침을 한 것. 제작진은 이 장면을 두고 ‘1번을 탁 찍으니 엌 사레 들림’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이 연상된다. 이 말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에서 나왔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견디다 못하고 사망하자, 치안본부장이 이를 은폐하려고 기자들 앞에서 한 말로 영화 <1987>에도 등장해 당시 사회를 겪지 않은 젊은 층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에스비에스> 쪽은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룬 것처럼 <런닝맨> 역시 당시 녹화 상황에 대한 풍자의 의미로 썼으며, 관련 사건에 대한 어떤 의도도 전혀 없다. 다만, 불편하셨을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더 주의해 제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아픈 역사를 패러디로 활용한 점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아픈 역사를 가지고 패러디? 생각이 없다”(moms***) “정말 이런 패러디는 아주 극악하다 정말 애들도 볼 수 있는 프로가 맞나??”(sukt****) 등의 댓글이 달린다.
예능프로그램에서 부적절한 패러디와 관련해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세월호를 비하하는 듯한 자막과 사진을 사용했고, <도시 어부>에서도 큰 고기를 낚아 올린 장면에서 ‘탁 치니 억 하고 올라오는 대물 벵에돔’이라는 자막을 삽입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각 프로그램 제작진은 “그런 의도는 없었다”며 조심하겠다고 했지만, <런닝맨>에서 또 논란이 됐다.
비하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예능이 가벼운 웃음을 주는 장르인 만큼, 비극적인 사건 사고를 재미를 위한 소재로 사용하는 것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을 일종의 유행어처럼 생각하고 문제 의식 없이 사용 한 것 같다. 희화화 의도는 없었다 하더라도 예능이 가볍게 웃음을 주는 장르인데 비극적인 사건, 사고를 연상케 하는 것을 웃음의 소재로 쓰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다. 이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현업에서 뛰는 제작진은 물론 윗선의 책임자들도 경각심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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