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에게 제주행은 41년간 자신을 가둬온 틀을 깨부수고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과 다름없다.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요? 몸와 마음의 지침을 당연하다 여기지는 않나요? ‘월간 쉼표토크’는 매달 첫주 월요일,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과 위로를 찾는 문화예술인들을 소개합니다.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합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김포공항에 앉아 제주 날씨를 체크하다 얼굴을 찌푸렸다. ‘구름 많음, 흐림.’ 제주의 봄햇살을 못 본다니, 출장의 피곤함이 갑자기 밀려든다. 40분을 날아 제주에 도착했다. 웬걸, 언제 피곤했나 싶다. 제주는 제주다. 날이 아무리 궂어도 탁 트인 제주가 주는 해방감은 여전하다. 음, 이래서 제주였던 걸까….
【제주가 속삭였다. “널 위한 삶을 살라고”】 지난달 13일 배우 김현숙(41)을 만나러 제주에 갔다. 그는 지난해 10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이 함께 내려왔다. “지난해 4월 제주에서 한달 살기를 했는데, 살면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남편, 아이와 큰 결심을 했죠.” 바람이나 쐬다 오자 싶은, 여유 부림이 아니었다. 김현숙에게 제주행은 41년간 자신을 가둬온 강박을 깨부수고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과 다름없다. “41년간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본 적이 없어요. 늘 조바심을 내며 살았어요. 아이 낳고 2개월 만에 다시 일을 했을 정도로. 일을 안 하면 불안했어요.”
힘들게 자랐던 어린 시절이 일을 습관으로, 쉼을 사치라 여기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소녀가장”으로 사실상 집안을 건사했다. “엄마가 일찍 혼자돼 우리 3남매를 키웠어요. 엄마 소원이 눈떴을 때 빚 걱정 안 하는 거였어요. 그런 엄마를 보면서 가족들 마음 편하게 살도록 돈을 벌고 싶었어요.” 배우의 꿈을 품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챙겼다. 학비를 벌어 대학에 갔고, 장학금을 못 받으면 등록금을 벌려고 휴학을 했다. 배우로 성공한 뒤에도 강박은 여전했다. “다른 배우들은 작품 끝나면 머리 식히러 여행을 다녀온다는데 전 도저히 그게 안 되더라고요. 내가 여행 간 동안 일이 들어오면 어쩌나 싶어서.”
그랬던 그가 틀을 깨려고 다짐한 것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며 돈을 벌었는데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어요. 인생이 허무해지더라고요.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나 자신을 위해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남편의 권유로 제주에서 한달 살기를 한 거예요. 제주의 자연은 사람의 열 마디 말보다도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어요.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내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고.”
제주는 40여년간 김현숙이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고 새롭게 태어난 요람이다.
“숲길을 걷고, 바다에 가고, 산에 올라요.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녀와서는 바닥에 철퍼덕 앉아 땅을 파고 개미와 놀고 나무와 말을 하죠. 바다에서 하루 종일 고둥을 잡아요. 벌이 나타나도 ‘같이 놀자’며 쫓아가요. 그러다 벌에 쏘인다고 걱정하면 ‘괜찮아. 벌 착해’ 그래요. 무슨 말에도 아이는 ‘괜찮아’라고 해요. 저도 모든 일에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습관처럼 일을 해 맘 편히 쉰 적이 없던 그가 제주에서 처음으로 마음의 평온을 느꼈다고 한다. 김현숙이 인근 카페에서 포즈를 취했다.
【영애로 12년간 우리를 위로한 힐링 메신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김현숙이 제주에게서 듣고 싶다는 이 말은 그가 12년간 우리에게 해온 말이다. 그는 2007년 지금의 <티브이엔>을 일군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이영애’로 전국의 수많은 ‘영애’들의 힐링 메신저였다. 시청자들은 ‘뚱뚱하고 못생겨서’ 불이익을 당하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며 자존감 높은 영애에게 감정이입했다. 예쁘고 가냘픈 여자 주인공들이 남자들에게 기대어 팔자 피는 드라마가 많던 시절, 영애는 존재 자체가 힐링이었다. “방송이 나간 뒤 당시로는 되게 신선해서 반응이 좋았어요. 시청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작품이자 캐릭터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죠.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드라마가 없던 시절이라 그것 자체가 화제가 된 것 같아요.”
시청자들은 영애와 인생을 함께했다. 시즌1 당시 30살이던 영애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시즌12에서 엄마가 됐듯, 12년간 드라마를 지켜본 수많은 영애들도 그랬다. “5~6명 일하는 작은 회사에서 지지고 볶는 장면, 가정에서 자식들 때문에 골머리 앓는 평범한 우리들의 엄마 모습, 연애·친구 관계 등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코미디와 페이소스가 많이 있었죠. 시청자들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죠. 한창 영애가 연애에 골몰할 때는 ‘너의 로맨스를 보려고 우리가 널 좋아했던 게 아니’라며 쓴소리를 할 때도 있었고.(웃음)” 그는 영애가 어떤 존재였냐는 질문에 “뭐인지 느껴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지내왔다”며 웃었다.
김현숙이 이영애였고, 이영애가 김현숙이었다. “시청자들과 함께하면서 어느새 이 드라마는 내 것만이 아니게 됐어요. 이영애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 왔죠. 마음대로 뭔가를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는 이영애의 이미지를 지키려 애썼다. 다른 좋은 제안이 와도 <막돼먹은 영애씨>를 우선에 뒀다. 극중 설정 때문에 다이어트도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 굳이 예뻐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제가 살을 조금 뺐더니 시즌 2~3때 제작진이 비상대책회의를 열기도 했어요. 김현숙 살 너무 빠졌다며.(웃음) 조동혁-이승준과 삼각관계를 형성할 때는 살을 좀 빼달라고 해서 뺐고, 시즌17을 하면서는 애 낳고 얼마 안 된 설정이어서 살을 찌워달라고 해서 4~5㎏ 불리고 촬영했어요.”
실제로 결혼을 할 때도 그는 제작진과 시청자의 눈치를 봤다고 한다. “당시는 드라마의 끝은 영애의 결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엄마가 된 영애를 담은 시즌17은 전 시즌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영애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시즌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 <티브이엔> 관계자는 “‘막영애’는 계속된다”고 밝혔다.
2007년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에서 버스 추행범을 잡는 등 씩씩한 솔로였던 ‘영애’는 12년이 지나 아이 엄마가 되는 등 시청자와 세월을 함께 보냈다. 티브이엔 제공
【보여줄 게 많은 배우 김현숙은 영원히 계속된다】 하지만 김현숙을 ‘영애’로만 가둬두기엔 좀 아쉽다. 김현숙은 대학 때부터 끼가 출중했다. 그의 학교에 리포터로 갔던 개그맨 박준형이 재능을 알아보고 수차례 러브콜을 보낸 끝에 <개그콘서트> ‘출산드라’로 출연해 단숨에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그를 개그우먼으로 아는 이도 많지만 김현숙은 처음부터 배우였다. 대학 때 수많은 단편영화의 주인공을 맡았고 뮤지컬 무대에도 섰다. 대중매체 데뷔는 영화 <친구> 단역이었다. “칠공주 멤버였는데, 통편집됐어요.(웃음)” 그게 인연이 되어 영화 <챔피언>에서 버스 차장으로 출연했다. “2004년 서울에 트렁크 가방 하나 들고 서울에 올라와 미아삼거리의 보증금 300에 월세 14만원짜리 옥탑방으로 시작했어요. 그땐 미국에 진출해 세계적인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죠.”
김현숙은 스스로 캐릭터를 창조해낼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뮤지컬 <펑키펑키>를 할 때는 처음엔 대사가 세 마디밖에 없었는데 매일 새로운 대사로 변주하는 노력을 인정받아 몇십분 분량으로 늘었다.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조역을 맡았을 때도 본래 각본에 없던 장면이 늘어났다. “감독님한테 얘기했어요. 조연이든 주연이든 각자의 우주가 있지 않으냐. 딱 한 신만 힘을 실어달라고.” <추리의 여왕>에서도 그는 서울대 나온 여자가 하는 반찬집 가게라는 설정에서 시작해 극중 의상부터 반찬 가게의 고급스러운 분위기 등을 만들었다.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선 섹시하고 화끈한 여성을 소화하는 등 코미디부터 장르물까지 다양한 얼굴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영애의 이미지가 강해 비슷한 배역이 들어오는 것은 아쉽다. “전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만 선택당하는 입장에서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요.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까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느 정도밖에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건 좀 슬픈 거 같아요.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다는 거.” 하지만 예전처럼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는 “제주에서 얻고 싶었던 것”이 “마음의 평안”이라고 했다. 그래서 평안을 찾았을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훨씬 나아졌어요. 제주에 내려와 산 이후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요. 그동안 사십춘기를 겪은 것 같아요. 저와 같은 이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나 자신을 위해 살아보라고. 그게 어떤 방법이 됐든 나에게 귀 기울여보라고.”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김현숙은 그렇게, 조금씩 더 나은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제주/글·사진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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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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