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6 시즌에 테너 강요셉이 출연한 독일 함부르크 국립오페라극장의 <윌리엄 텔>. ⓒBrinkhoff/M?genburg
‘윌리엄 텔’(영어), ‘기욤 텔’(프랑스), ‘빌헬름 텔’(독일), ‘굴리엘모 텔’(이탈리아).
1829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로시니 오페라 <윌리엄 텔>은 다양한 나라의 판본으로 만들어져 지금껏 사랑받는 대작 오페라 중 하나다. 14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던 스위스를 배경으로 폭정에 맞서 싸우는 인물 윌리엄 텔과 스위스 민중의 이야기를 그린다. 도입부에서 힘찬 트럼펫 연주가 인상적인 ‘윌리엄 텔 서곡’과 윌리엄 텔이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화살로 떨어뜨리는 장면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윌리엄 텔>은 아름다운 선율과 웅장한 합창, 엄청난 고음의 아리아, 극적인 장면을 위한 춤이 포함된 약 4시간짜리 대작이다. 긴 공연시간과 기교적인 어려움 탓에 세계 무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없는데 국내 초연된다. 국립오페라단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10~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프랑스어로 선보인다. 4막 5장 구성으로 공연시간은 220분(인터미션 두번 포함)이다. 시대 배경은 우리나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으로 설정해 폭압에 항의하고 자유를 외치는 스위스 민중의 모습을 통해 항일투쟁을 엿볼 수 있게 연출했다.
강요셉 테너가 3일 오후 서울 양재동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오페라<윌리엄텔>의 포스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초연되는 공연에서 무게중심을 잡는 건 윌리엄 텔과 함께 조국을 위해 싸우는 아르놀드 역의 테너 강요셉(41)이다. 그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을 제외하곤 최근 <윌리엄 텔>을 제작한 프로덕션 7곳에서 아르놀드 역을 독점해 맡았다. 2014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오페라극장에서 올린 <윌리엄 텔>로 2016년에 ‘오스트리아 음악극장상’ 남우주연상을 동양인 최초로 받기도 했다.
3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강요셉은 “쉽지 않은 작품이라 국립오페라단이 어떻게 작품을 만들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동안 해온 세계 극장들과 비교해도 완성도 있게 준비되고 있다”며 “내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며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요셉이 맡은 아르놀드는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합스부르크가의 공작 딸과 사랑에 빠졌으나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윌리엄 텔과 함께 오스트리아에 맞서 싸운다. 순수한 사랑꾼과 독립투사의 면모를 보여주는 연기와 ‘극한의 고음’이라는 하이시(C·높은 도)를 스무번 이상 해내야 하는 고난도 배역이다. 세계적인 테너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아르놀드 역을 생전에 피했던 것으로 알려질 만큼 <윌리엄 텔>은 아르놀드 역할이 중요하다.
“테너가 내는 최고의 고음이 하이시인데 이 소리를 못 내는 테너도 있어요. <라보엠>의 로돌프는 하이시가 한번 나오는데 <윌리엄 텔>은 스무번 넘게 나오니 엄청난 부담이죠. 반면 자신의 기교를 뽐낼 수 있는 작품이에요. 고음을 밝게만 부르지 않고 낮은 음악에서도 센 소리를 내야 하는데 이런 극적인 부분을 잘 표현하는 게 제 장점 같아요.”
그가 처음부터 고음에 능숙했던 건 아니다. 오페라가수도 꿈이 아니었다. 음악교사를 목표로 국내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시절 우연히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했다가 인생이 바뀌었다. “가르치던 선생님이 유학을 권유했어요. 그때까지도 제가 소질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죠. 하이시도 내지 못했고요.”
2015~16 시즌에 테너 강요셉이 출연한 독일 함부르크 국립오페라극장의 <윌리엄 텔>. ⓒBrinkhoff/M?genburg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에 입학한 그는 깨끗하고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고음으로 각종 콩쿠르에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3년엔 한국인 최초로 베를린 도이치오페라극장의 전속가수가 됐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 없을 만큼 성실하게 일했던 그는 2013년에 극장을 박차고 나왔다. “한곳에 매여 있으니 다른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나태해지더라고요. 다른 곳에서 제 능력을 인정받고 도전하고 싶었어요.”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2013년 12월 어느날 오스트리아 빈 국립극장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날 열리는 <라보엠> 공연의 로돌포 역으로 서달라고요. 대타였는데 많이 해본 역할이라 베를린에서 바로 갔어요. 공연이 7시인데 15분 지나 도착해보니 공연장이 난리가 났죠. 급히 화장하고 의상 입고 무대에 섰어요. 상대역인 미미가 (유명한)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인 것도 몰라 무대에서 깜짝 놀랐죠. 정신없이 공연을 끝냈는데 제 아리아에서 4분30초 동안 박수가 터졌어요. 그날 이후 출연 요청이 쏟아졌죠.”
세계 유수 극장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다양한 오페라에서 활약하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 건 지난해 12월이다. 성대에 이상이 생겨 뉴욕에서 수술을 받고 한동안 치료와 재활에 집중해야 했다. 이번 <윌리엄 텔>은 약 5개월 만의 복귀작이다. “복귀하면서 불안감, 기대감이 다 있었지만 <윌리엄 텔>은 많이 해본 작품이니 편한 마음으로 해보려고요. 연출가가 안에 있는 감정을 다 끌어내라고 해 연기하며 팔이 멍들고 살이 빠질 정도로 힘든데 좋아요. 초연되는 작품이지만 노래나 연기가 웅장해 관객들이 좋아하실 거라고 기대합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