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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유희열 있으매…스케치북에 한땀한땀 그려낸 ‘청각의 희열’ 10년

등록 2019-04-23 18:53수정 2019-04-23 19:58

10주년 맞은 ‘유희열의 스케치북’

KBS2 최장수 심야 음악 프로그램
전문성·유머 두루 갖춘 유희열
인디 뮤지션들에게 무대 내주며
실험적 공연으로 ‘귀 호강’ 선사

유희열 “<스케치북>에선 일하는 느낌 없어
조용필, BTS 초대하고파”
조준희 피디 “10돌은 유희열의 힘
음악과 관객의 윤활유 역할”
“어색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유희열의 표정에 만감이 스쳤다. 속사포 같던 평소답지 않게 말과 말 사이 호흡도 길어진다. “1회 녹화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라니 믿을 수가 없네요.” 38살에 마이크를 잡아 40대를 함께 보낸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4월24일 10살이 됐다.

처음엔 대를 잇는 <한국방송2> 심야 음악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1992~1994)로 시작해 <이문세쇼>(1995~1996) <이소라의 프로포즈>(1996~2002) <윤도현의 러브레터>(2002~2008) <이하나의 페퍼민트>(2008~2009)에 이어 6번째 바통을 이어받았는데,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키며 지상파 대표 음악프로그램이 됐다.

최재형 책임피디(시피)는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부터 이어져온 <한국방송> 심야 음악프로그램의 전통이 있다. 27년간 기존 지상파 방송들이 담을 수 없던 새로운 음악을 찾아낸다는 정체성을 이어온 것이 비결 같다”고 말했다.

방송 10돌을 맞은 <유희열의 스케치북> 진행자 유희열. 한국방송 제공
방송 10돌을 맞은 <유희열의 스케치북> 진행자 유희열. 한국방송 제공
■ 노래 잘하는 이들의 공간
시청률은 1~2%대로 높지 않지만 “10년간 내부적으로 존폐 논의가 한번도 없었을 정도”(최재형 시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시청률 이상의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다양한 음악이 설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 가장 빛나는 가치”라고 말했다. 매주 3~4팀씩 지금껏 약 950팀이 다녀갔는데, 아이돌 음악 일색이던 시절 인디 뮤지션 등 설 자리가 없던 이들이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지금은 해체한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해 볼빨간사춘기, 십센치 등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일조했다. 지난 2월 종영한 노래 경연프로그램 <더 팬>(에스비에스) 우승으로 유명해진 카더가든을 2017년 ‘실력파 뮤지션’으로 한달 내내 소개하기도 했다.

또 이효리가 싱어송 라이터 김태춘과 합동 무대를 꾸미는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시도로 음악적 재미를 풍부하게 해줬다. 김학선 음악평론가는 “세션 연주인들을 조명한 ‘더 뮤지션’ 같은 특집은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할 수 있는 기획”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최재형 시피는 “섭외는 녹록잖지만, 좋은 뮤지션 발굴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2009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첫방송에서 출연했던 가수 이소라와 대화하는 유희열. 한국방송 제공
2009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첫방송에서 출연했던 가수 이소라와 대화하는 유희열. 한국방송 제공
■ 유희열, 입담+전문성의 조화
<김정은의 초콜릿>(2008~2011) 등 한때 심야 음악프로그램은 전성기를 누렸다. 다 사라지는 동안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굳건한 데는 진행자 유희열의 역량을 빼놓을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조준희 피디는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10돌까지 온 데는 유희열이 가진 힘이 크다. 관객과 시청자들도 편하게 몰입할 수 있게 하며 윤활유 역할을 해줬다”고 말했다.

다른 진행자들과 견줘 전문 뮤지션으로서 음악적 지식이 풍부한 것이 남다른 점이다. 최재형 시피는 “대중음악인으로서 전문성이 있다 보니 어떤 음악인이 나와도 그 사람과 공감대를 이루면서 이야기를 물 흐르듯 진행해나간다”고 분석했다. 유희열도 23일 열린 간담회에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오면 일하는 느낌이 안 든다. 게스트를 만나는 게 음악 활동의 동의어처럼 느껴져서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첫 녹화 당시 “떨린다”면서도 “<꽃보다 남자>에 이어 <한국방송>이 미남 마케팅을 한다”는 등 농을 치며 관객을 편안하게 이끌었을 정도로 타고난 입담도 매력이다. 조준희 피디는 “토크에서 웃음 포인트를 잘 안다”며 “본인이 망가지거나 후배들에게 농담을 던지며 뮤지션을 살려주면서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데뷔 이후 처음으로 텔레비전 진행을 맡았던 그가 <케이팝스타> <대화의 희열> 등으로 예능 진행자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도 시너지 효과를 냈다. 조준희 피디는 “방송 초기 뮤지션으로서 음악적 지식을 나누면서 5년 정도 지나니까 예능 진행자로도 물이 오르며 음악 외적인 부분에도 대중들의 호응이 커졌다”고 말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2017년 당시만 해도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인 카더가든(사진 왼쪽)을 소개하는 등 음악인들을 발굴해왔다. 한국방송 제공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2017년 당시만 해도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인 카더가든(사진 왼쪽)을 소개하는 등 음악인들을 발굴해왔다. 한국방송 제공
■ 10돌 특집? 유희열 새 음원!
제작진은 <전국 노래자랑>에 버금가는 장수 프로그램이 되기를 바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장점이던 새로운 뮤지션 발굴이 유튜브 등 플랫폼 다양화로 다소 약해지고 있는 건 고민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포맷 변화 등 다양한 부분을 열어 놓으려고 한다. 김학선 평론가는 “올해 출연진 명단을 보면 ‘안전지향’적이란 아쉬움이 든다. 차트엔 들지 못하지만 개성 있고 멋진 뮤지션 등 좀 더 시각을 넓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유희열은 “조용필과 비티에스(BTS)를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김현철과 크러쉬, 볼빨간사춘기,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로 26일 10돌을 기념한다. ‘깜짝 선물’도 있다. 유희열이 프로그램을 위한 새 노래를 부르고 이를 음원으로 발표한다. 유희열이 자신의 이름으로 음원을 내는 건 2014년 <토이 7집> 이후 5년 만이다. “방송을 하면서 음악을 열심히 못 해서 자책할 때가 많다”지만, 그래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계속된다. “라이브계의 버라이어티 고품격 음악방송 <스케치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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