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간난이>와 1999년 <국희>에 아역 영구와 국희로 출연해 인기를 얻은 배우 김수용과 박가령이 요즘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누비고 있다. 다시 보고 싶은 배우들로 꼽히는 두 사람을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마주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8일 막을 올린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명동예술극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람. 아버지를 지지하고 신뢰하는 갈릴레이의 딸 비르기니아를 연기하는 배우 박가령(31)이다. 대사가 많고 장면 전환이 빨라 힘든 연기를 수준급으로 소화해냈다. 14일 끝나는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디큐브아트센터)에서는 드라마보다 차가운 느낌을 더한 ‘뮤지컬판 최대치’가 호평받고 있다. 배우 김수용(43)이다.
연극과 뮤지컬 마니아가 아니라도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해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 시절 우리를 미소 짓게 했던 ‘아이’들이다. 최고 시청률이 각각 60%, 53%에 이를 만큼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간난이>(문화방송·1983)와 <국희>(문화방송·1999)의 주인공, 영구와 국희. 유튜브 등을 통해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의 미달이(김성은) 등 과거 아역들이 다시 주목받는 요즘, 유독 궁금했던 두 사람을 <한겨레>가 소환했다.
김수용은 1983년 <세자매>(7살), 박가령은 1999년 <국희>(11살)로 데뷔하며 활동 시기가 달라 “아역 시절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는데도 비슷한 ‘배우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둘 다 잠깐 활동 뒤 큰 인기를 얻었고 “초등학교 때 너무 촬영만 해서 중학교 때는 좀 놀고 싶어서”(김), “대학 생활이 재미있어서”(박) 영광을 뒤로하고 사실상 연기를 그만뒀다. 잊힌 듯했는데 어느새 어른이 되어 무대를 휘젓고 있다. 김수용은 2002년 뮤지컬 <풋루스>를 시작으로 <렌트> <그리스> <헤드윅>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며 2005년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상, 2007년 주연상을 꿰차는 등 일찌감치 뮤지컬계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시작 단계인 박가령은 2015년 연극 <옥탑방 고양이> 이후 2018년부터 국립극단 시즌(계약)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둘 다 “무대에서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에 반해 뮤지컬과 연극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이 높은 지명도를 이용해 공연계로 쉽게 넘어오는 것과 달리,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것도 남다르다. 박가령은 “연기의 기본부터 다시 다지고 싶어 국립극단 단원이 되려고 2015년부터 매년 공고가 날 때마다 문을 두드리다 몇번의 좌절 끝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단원이 된 뒤에도 자신이 과거 <국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내세우지 않는다. 김수용은 “제대 뒤 뮤지컬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앙상블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고 말했다.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다 4년 만에 데뷔했다. 어린 시절부터 텔레비전 드라마에 익숙했던 두 배우는 기본기부터 다시 다졌다. 김수용은 “1990년대 중반엔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제작사에 전화해 받은 대본으로 혼자 연습했다. 알음알음 ‘배움 동냥’을 한 셈”이라며 “몸을 유연하게 하려고 무용학원에도 다녔고 매일 다리 찢기를 하다 3개월 만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과거에 기대지 않는 노력 덕분에 두 사람의 무대는 호평을 받는다. 김수용은 어떤 캐릭터도 그가 하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스로 “비슷한 인물을 연이어 맡지 않고, 맡는 역할마다 나만의 새로움을 집어넣어 재창조하려고 고민”한 결과다. <여명의 눈동자>에서도 여옥밖에 모르는 최대치의 성격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례적으로 탁성을 심하게 내며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로 바꿨다. <여명의 눈동자> 이후 출연 예정인 대형 뮤지컬 작품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까를 벌써부터 고민 중이다. 박가령은 <호신술>에서 개그프로그램 ‘큰집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분장도 마다않는 등 다양한 도전을 시도한다. 둘 다 배우 출신답게 감정 연기가 풍부하고 발성 등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에겐 ‘다시 보고 싶은 귀여운 영구와 국희’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양날의 검이다. “당시만 해도 아역 배우에 대한 인식이 너무 강해 오디션을 보러 갈 때마다 아역 느낌이 너무 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박) “저도 신선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수많은 오디션에서 추풍낙엽처럼 후두두 떨어졌죠. 그걸 탈피하려면 내가 더 노력해서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어요.”(김) 한편으로 아역은 성인 배우로 올라서는 디딤돌이 됐다. “어릴 때 늘 기다리면서 음악을 팝, 재즈, 가요 등 가리지 않고 들었어요. 하도 듣다 보니 악기별로 쪼개 듣는 버릇이 생겼죠. 춤을 소재로 자유와 청춘을 노래하는 <풋루스>에서 주연을 맡아 뮤지컬에 데뷔하게 된 것도 생각해보면 그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김)
과거 아역 배우의 영광이 그립지 않으냐고 물으니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금은 아역들이 스타 대접을 받지만 당시는 그냥 아이 연기자일 뿐이었어요. 식당 가면 이모님들이 반찬 더 주고 그런 게 좋았던 정도?”(박) “너무 힘들었어요. 하하. 어린 나이에 지게를 지는 등 늘 불쌍한 연기만 했으니까요. 또 그때는 아역 배우들도 밤샘을 했어요. 못하면 꿀밤도 맞고 하하. 그때도 쪽대본이 많아서 팩스로 받은 대본을 한시간 만에 외워야 하기도 했죠.”(김)
박가령의 경우 김태희의 아역으로 출연한 <천국의 계단>이 유튜브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어제’가 아니라 ‘오늘’의 성취다. “한번도 못해 본 <지킬 앤 하이드> 등 더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서”(김), “연극 배우로서 입지를 단단히 하고 싶어서”(박) 어른이 된 영구와 국희는 오늘도 무대를 누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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