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왼쪽부터) ‘국민 여러분’ ‘열혈사제’ ‘닥터 프리즈너’ 등 인기를 끌고 있는 지상파 드라마들. 각 방송사 제공.
‘요즘 지상파 드라마 누가 보냐?’
한때 유행어처럼 번졌던 말이다. 젊은층이 기존의 틀을 깨는 다양한 드라마를 따라 다른 채널과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지상파는 고루한 매체로 전락했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지상파 주말드라마 시청률이 30%를 넘어선 반면, 젊은층을 겨냥한 미니시리즈는 수년간 고전했다. 그랬던 지상파 드라마들이 최근 팔딱이고 있다. 방영 중인 미니시리즈 대부분이 시청률과 화제성 지수 두마리 토끼를 잡으며 모처럼 ‘지상파 드라마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지상파 3사와 <티브이엔>(tvN), <제이티비시>(JTBC)에서 방영 중인 월화·수목·금토일 프라임타임대 미니시리즈 총 14편의 시청률(최근 방영분 기준)을 비교했더니 1~4위가 모두 지상파였다. 1위 <열혈사제>(에스비에스, 19.4%)에 이어 <닥터 프리즈너>(한국방송2, 14.6%), <해치>(에스비에스, 8.2%), <국민 여러분>(한국방송2)이 잇따랐다. 포털과 에스엔에스 등 온라인상에 많이 언급되는 내용을 집계해 젊은층의 관심도를 반영하는 콘텐츠영향력지수(CPI)에서도 4월 첫째 주 가장 화제를 모은 드라마는 <국민 여러분>이었다. <열혈사제>(2위), <닥터 프리즈너>(4위)도 선전했다. 3월 넷째 주엔 <더 뱅커>(문화방송)가, 3월 셋째 주엔 <닥터 프리즈너>가 1위에 올라, 이례적으로 3주 연속 지상파 드라마가 콘텐츠영향력지수 선두를 차지했다.
호평받는 지상파 드라마의 공통점은 시대적 보편성과 형식적 개성이다.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라 폐부를 찌르는 쫀쫀한 내용으로 시청자의 공감을 산다. 사기꾼이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을 그린 <국민 여러분>은 정치인을 불신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지하철 꼭 놔 드리겠다”는 공약을 내놓는 국회의원 후보들을 향해 주인공 양정국은 “진짜 국민들 편하라고 그러는 거야? 집값이 오르니까, 그러면 니들이 돈을 버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며 정치인들의 이해충돌 행태를 꼬집었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문화방송)은 한국 드라마에선 처음으로 근로감독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편의점 아르바이트비 착복, 운전기사 폭행 등 갑질 문제를 조명했고 드라마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노동자들의 복직투쟁도 다뤘다. 2018년에 6부작으로 선보였다가 이번에 12부작으로 다시 만든 <회사 가기 싫어>(한국방송2)는 샐러리맨들의 현실을 깨알 같은 풍자로 그려낸다.
근엄한 내용에 코믹, 액션 등 다채로운 장르를 결합하는 등 새로운 형식에도 도전했다. <회사 가기 싫어>는 케이블 드라마에서 시도하던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했고, 경찰, 정치인 등의 카르텔을 파헤치는 진지한 내용의 <열혈사제>는 주인공 김남길이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기묘한 가족>이 <극한직업>에 밀린 실제 현실을 대사로 담아내는 ‘셀프 디스’로 시청자들을 웃기기도 했다. <국민 여러분> 이건준 책임피디는 “첫화에서 남녀가 만나 결혼까지 하는 등 이전 지상파에 비해 이야기 전개가 상당히 빠르다”며 “정통 드라마에 액션·코믹을 집어넣는 복합장르 형식이 신선함을 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상파 드라마들의 좋은 성적표는 절치부심의 결과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관계자는 “충성도 높은 시청층인 중장년층을 사로잡자는 방어적 전략을 세웠던 지상파들이 이젠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과감한 시도를 해보자는 흐름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가기 싫어>는 지난해 제작 당시 이례적으로 예능국 피디가 다큐국으로 옮겨 가 콜라보를 시도했다. 편성에서도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에스비에스>는 시청행태를 분석해 금토드라마 시간대를 만들고 첫 작품으로 <열혈사제>를 선보였다. <국민 여러분>은 9일 본방송 직전에 앞서 방영된 에피소드를 재방송으로 편성해 케이블처럼 몰아보기 효과를 노렸다. 젊은 피디들이 늘어나면서 지상파라는 자기 검열에 빠지지 않고 ‘재미있으면 한다’는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이 관계자는 “한때 한창 일하던 중간급 피디들이 많이 이직하면서 지상파 드라마가 부진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이젠 어린 피디들이 성장해 나름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7년 메인 연출로 입봉한 <국민 여러분> 김정현 피디는 1회에서 공간을 원테이크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훑는 것으로, 시간에 따른 두 남녀의 감정 변화를 보여준 참신한 연출이 눈길을 끌었다.
지상파의 상승세는 계속될까. 안판석 감독이 연출하고 정해인, 한지민이 나오는 <봄밤>(문화방송·5월 방영)과 <정도전>을 쓴 정현민 작가의 <녹두꽃>(에스비에스·4월26일)이 화력을 갖추고 흥행 대기중이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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