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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제 ‘정의로운 죽음’ 기록하는 4·3기억운동 시작해야죠”

등록 2019-04-08 02:34수정 2019-04-08 16:23

[짬] ‘제주4·3평화상’ 받은 현기영 작가

지난 1일 제주시 제주칼호텔에서  ‘제주4·3평화상’ 수상자로 기념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현기영 작가.
지난 1일 제주시 제주칼호텔에서 ‘제주4·3평화상’ 수상자로 기념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현기영 작가.

“기억운동은 냉전세력의 대중조작과 대중의 무관심에 맞서는 일입니다. 4·3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되새기는 재기억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담론과 증언, 증거가 끊임없이 환기돼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망각행위에 저항하는 기억운동입니다.”

지난 1일 제주4·3평화재단이 주는 ‘제3회 제주4·3평화상’을 받은 소설가 현기영(79])씨는 ‘4·3의 기억’이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현씨는 “4·3평화상은 다른 어떤 상보다도 저의 정체성을 인정받는 느낌이어서 무척 기쁘다. 이 상은 제가 잘 나서 받았다기보다는 같이 활동해온 후배들과 함께 받는 것이다”라며 후배들에게 공을 돌렸다.

‘도령마루 4·3 해원상생굿’ 참가
소설 ‘도령마루의 까마귀’ 실제 현장
“지난 70년 위령조차 제대로 못해”

3만여 억울한 희생 ‘진혼’ 대책 제안
국가 배상·교과서 기록·재발방지
“문화예술 작품으로 기억복원 절실”

지난 6일 제주시에서 열린 ‘도령마루 4·3 해원상생굿’에서 만난 현씨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지난 70여년 동안 우리는 돌아가신 분들을 제대로 위령조차 하지 못했다”며 “수난의 땅은 진혼돼야 한다. 진정으로 진혼되려면 그들에게 뒤집어 씌운 붉은 누명을 벗기고, 제대로 대한민국 역사에 정의로운 죽음으로 기록해야 한다. 그날 비로소 3만여 원혼이 잠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령마루는 그가 <순이삼촌>을 발표한 이후 고 현용준 제주대 교수로부터 도령마루에 얽힌 4·3의 체험을 듣고 쓴 소설 <도령마루의 까마귀>의 무대이기도 하다.

지난 4월6일 제주시 도령마루에서 열린 ‘4·3해원상생굿’에 참석한 현기영 작가. 사진 허호준 기자
지난 4월6일 제주시 도령마루에서 열린 ‘4·3해원상생굿’에 참석한 현기영 작가. 사진 허호준 기자
현씨는 1978년 제주 북촌리 대학살을 그린 소설 <순이삼촌>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면서 대학가와 지식인들에게 4·3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으나, 이듬해 군 정보기관에 끌려가 심한 고초를 겪었다. <순이삼촌>은 그뒤 14년 동안 금서로 묶였다. 4·3을 소재로 한 자전적 장편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도 국방부의 불온도서로 선정되는 시련을 겪었다. 현씨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지낸 문단의 원로이자 제주4·3연구소 초대 소장(1989)과 이사장, 4·3 50돌·60돌·70돌 기념사업위원회 대표를 도맡아해온 4·3 진상규명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현씨의 고향은 제주시 노형동 이른바 함박이굴이다. 4·3 때 온마을이 불 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제주도 곳곳에 학살터가 남아 있다. 복구가 안된 채 불타버린 집터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인간과 땅은 하나인데, 집이 불에 타니까 어린 시절부터 내 몸 한 귀퉁이가 타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왔다”고 토로했다.

현씨는 다시한번 기억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억운동의 최대 장애물은 4·3을 부정하는 냉전세력이다.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4월 3일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됐지만, 4·3의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고 음해하는 세력이 아직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잃어버리거나 지워진 사실을 끄집어내는 운동, 사회적 집단적 기억을 되살리는 기억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그는 “3만의 억울한 혼을 진혼하려면 배상도 해야 하고, 역사에 제대로 올려야 한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억하는 사업들을 계속 벌여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억운동은 우선 역사 교과서에 제대로 밝히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그는 제안했다. “국가수립 과정에서 일어난 4·3의 대참사는 한국 역사의 큰 실패이자 치욕이다. 그 실패를 역대 정권은 폭압적으로 은폐해왔다. 이제 대한민국의 공식 역사에서 그 실패까지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 4·3의 진실을 정확하게 기록해 지워진 역사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 역사 교과서에 자랑스럽고 성공한 사례들과 함께 실패한 역사도 남겨야 한다. 4·3의 진실을 교과서에 실어 국가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1987년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 이후 전개된 30여년에 걸친 ‘4·3 운동’에 대해서 그는 “시들해졌다”고 쓴소리도 던졌다. “4·3과 같은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역사를 제주도민과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예술의 몫이 매우 중요하다. 해마다 4·3 즈음에 작품을 낸다. 그러나 미술·문학·연극 등 문화예술 전반이 예전만큼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문화예술가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외면하는 독자와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감동을 줘야 한다.” 대선배로서 그는 후배 문화예술인들의 노력도 당부했다.

“인정받지 못하고 죄인의 누명을 쓴 채 버려진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과 상처를 망각과 무명의 어둠에서 불러내 진혼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 죽은 자들뿐 아니라 고문과 옥살이로 육체와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위무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다시는 망각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재기억시키는 일을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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