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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전설’ 된 ‘청춘 신성일’을 만난 엄앵란 “저녁노을 보면 소리없는 눈물이…”

등록 2019-04-04 19:06수정 2019-04-04 19:12

영상자료원 신성일 기획전 찾아
5개월 전 떠난 남편 애틋함 전해

‘맨발의 청춘’ 등 신성일자취 한눈에
결혼앨범·청바지 등 복원·공개
엄앵란(왼쪽) 배우와  딸 강수화씨가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열린 기획전시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엄앵란(왼쪽) 배우와 딸 강수화씨가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열린 기획전시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신성일 선생님이라고 해야 하나, 그분이라 해야 하나, 남편, 애기 아버지라고 해야 하나. 오면서 연구를 했는데 생각이 안 나네. 하여간 같이 살았으니 남편이죠. 그런데 난 너무 가까이 살아서 그런지, 우리 남편이 유명한지 알았지만 이런 대단한 곳에서 사진 행사를 한다는 게 (실감이 안 나고) 정말 영광스럽고 감사해요.”

엄앵란(83)의 목소리가 떨렸다. 4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내 한국영화박물관의 신규기획전시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 개막일에 맞춰 기자들과 영상자료원에서 만난 그는 오랜만의 외출이라며 안부를 전했다. 지난해 11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5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나타난 그는 “전시장을 돌아보니 눈물이 핑 돈다”고 했다. “내가 강가에 사는데 저녁노을을 보면 소리 없는 눈물이 나요. 나도 언젠가 가겠지, 이 양반은 지금 어디 있을까 싶고. 사랑했다고 하면 야하고 55년을 살았는데 인간의 정이라는 게 가슴 뿌리에 있구나 싶어요.”

신성일과 엄앵란이 출연한 ‘맨발의 청춘’(1964)의 한 장면.
신성일과 엄앵란이 출연한 ‘맨발의 청춘’(1964)의 한 장면.
이번 전시는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신성일과 1960년대 청춘영화가 주제다.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신성일은 50여년 간 514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긴 세월 사랑받았다. 최초로 ‘스타시스템’ ‘콤비’란 말을 만들어낸 신성일, 엄앵란 커플은 함께 58편의 영화를 찍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엄앵란은 “(1960년대엔) 다들 우리를 찾을 때라 24시간 동안 영화사를 네 군데 다닐 정도로 바빴어요. 나는 19살 때 데뷔해 선배고, <로맨스 빠빠> 때 신성일씨를 처음 봤어요. 무 깍둑 썰어놓은 것처럼 보여서 ‘저 남자가 뭘 하겠나’ 했는데 눈을 크게 뜨고 연기하는 걸 보니 ‘저 남자는 되겠다’ 했지.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동백아가씨>를 촬영할 때 신성일씨가 스태프들과 화투를 치는데 눈치가 빨라 돈을 잘 따더라고. ‘저 남자 참 머리 좋다, 저 남자랑 결혼 하면 잘 살겠다’ 했던 적도 있어요.(웃음)”

6월 30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영화 <맨발의 청춘>(1964)을 중심으로 그가 한국영화사에 남긴 기록을 사진, 영상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신성일이 입어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던 영화 속 흰 가죽 재킷과 청바지도 복원돼 공개됐다. 또 신성일이 보관한 두 사람의 결혼 앨범도 최초로 공개한다.

엄앵란은 “옛날엔 영화배우라고 하면 딴따라라고 하고 헤프게 봤다”면서 “영화 전공 학생들이 전시회를 와서 보고 우리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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