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사건을 빼닮은 내용이 나오는 ‘열혈사제’(SBS). 방송 화면 갈무리
“라이징문의 실소유주는 표면적으로는 박원문 국회의원의 아들 박신우입니다. 하지만 남석구 구담구 경찰서장의 지분이 제일 많습니다. 클럽 안에서 공공연하게 필로폰이 돌아 셀럽과 재벌 2세가 비밀리에 오가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가 아니다. 드라마 대사다.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라지만, 요즘엔 현실과 ‘싱크로율 100%’의 이야기들이 속속 등장하며 시청자들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버닝썬’은 드라마 <열혈사제>(에스비에스)의 ‘라이징문’과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진다. 이 드라마는 구담구의 구청장과 국회의원, 조폭은 물론 경찰서장까지 카르텔을 형성하며 온갖 비리와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이다. 빅뱅의 승리가 운영하는 클럽 버닝썬에서 마약이 유통되고 경찰과 거래가 이뤄졌듯 <열혈사제>에도 경찰서장을 실소유주로 설정했고 “관할 마약팀이 급습할 때마다 (현장이) 깔끔하다”며 유착관계를 암시한다.
<에스비에스> 관계자는 2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경찰과의 카르텔 등 기본적인 이야기 흐름은 애초 시놉시스에 있었지만, 클럽 이름(‘선’과 대비되는 ‘문’) 등 세부적인 내용은 실제 사건을 참고해 수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해당분의 대본은 ‘버닝썬 사건’이 터진 뒤에 작성됐다. ‘버닝썬 사건’은 다른 드라마들에도 영감을 주는 모양이다.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한국방송2)에서도 등장인물들이 강남에 새로 오픈했다는 클럽을 둘러싼 이야기를 하면서 “동영상 조심해”라고 충고하는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타락한 법조인의 모습을 다룬 ‘아이템’(MBC). 방송화면 갈무리
경찰과 검찰의 의심스러운 수사, 석연치 않은 판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드라마 <아이템>(문화방송)도 이런 부분을 꼬집는다. 비자금 의혹을 받던 재벌 그룹 화원의 조세황(김강우) 회장이 구치소에서 나오자, 사건을 담당한 한형수 특별검사는 “법과 상식에 반하는 판결”이라며 겉으로는 강하게 비판하지만 정작 조 회장을 풀어준 것은 한형수 본인을 비롯해 검사, 판사, 대형 로펌 대표 등 법조인이다. 이들은 조세황 회장 앞에서 ‘개’처럼 아부한다.
대한항공의 조양호 일가의 갑질 등 안하무인 재벌들의 만행은 <닥터 프리즈너>(한국방송2)에서 재연된다. 극중에서 재벌의 배다른 자식으로 태어난 이재환(박은석)은 첫회부터 막무가내 언행으로 시청자들을 자극하더니, 응급수술 중인 의사 나이제(남궁민)를 불러내어 배우인 동생의 얼굴에 긁힌 상처부터 치료하라며 난동을 부린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이재환의 행동을 보며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 눈물까지 났다”는 내용의 반응을 보였다.
친일파 집안 경찰서장에 “토착왜구” 부당한 사건 해결에 적극 나서는 상식·원칙 지키는 정의사도 등장 속 시원한 복수에 시청자 대리만족
안하무인 재벌 갑질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닥터 프리즈너’(KBS2)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은 최악의 인권유린 사례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연상케 하는 줄거리다. 극중 고아였던 이자경(고현정)과 그의 동생은 어린 시절 대산복지원에 사실상 강제로 끌려간다. 복지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그들을 넘긴 이가 바로 검찰 수사관이다. 1970~80년대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진 거리 부랑아들과 고아들은 잔혹한 구타, 강제노역에 장기 적출, 암매장의 피해자가 됐는데, 대산복지원에서 자행되는 일들도 비슷하다. 이자경 역시 엄청난 학대를 받고 자란다.
드라마는 현실과 닮았으되,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길 바라는 시청자들의 소망대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현실과 큰 차이가 있다. 드라마에선 정의의 사도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시청자들의 속을 펑 뚫어준다. <열혈사제>의 사제 김해일(김남길)은 대대로 친일파 집안인 경찰서장을 ‘토착왜구’라고 비웃고, 경찰 구대영(김성균)과 검사 박경선(이하늬)과 함께 ‘라이징문’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지만, <동네변호사 조들호2>의 이자경은 복수의 칼을 갈며 대산복지원 관계자들을 한명씩 죽임으로써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닥터 프리즈너>에서도 이재환에 의해 해고된 의사 나이제는 이재환에게 직접 복수의 펀치를 날린다. 제발 현실도 드라마 같기를.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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