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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제작비 부족 상쇄시킨 감동의 135분

등록 2019-03-12 03:00수정 2019-03-12 09:20

개막일 연기·투자 부족 위기에도
런웨이 같은 무대로 생동감 살려
반주 음악·평면적 영상 아쉬웠지만
세심한 연출·연기력으로 여운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수키컴퍼니 제공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수키컴퍼니 제공
공연이 끝나고 기립박수가 쏟아지자 앙상블 배우 몇몇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공연을 무사히 올린 것에 감사한 듯, 너와 내가 함께해냈다는 것에 감동한 듯, 주인공인 여옥(뮤지컬배우 김지현)·대치(박민성)·하림(이경수)도 서로를 안아준 뒤 무대를 떠났다. 초연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가 만들어진 뒷얘기를 아는 관객들에겐 가슴 뭉클한 커튼콜이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1991년 <문화방송>(MBC)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를 바탕으로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여옥, 대치, 하림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국민 드라마’의 뮤지컬화는 기대가 높았지만 캐스팅 발표와 티켓 오픈일정이 늦어지고, 개막일이 3주가량 연기되면서 작품이 제대로 선보일 수 있을지 우려를 샀다. 역시나 약속된 투자금을 10%밖에 받지 못해 제작비 부족으로 좌초위기를 겪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여곡절 끝에 뮤지컬은 제작비를 최소화해 지난 1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개막했다. 1200석 대극장에 어울리지 않게 무대는 단출했고, 오케스트라도 없이 반주음악(MR)을 사용했다. 제작진은 패션쇼 런웨이 무대처럼 깊고 긴 무대를 만들고 무대 양옆에 320석의 객석(‘나비석’)을 배치했다. 객석을 무대에 올린 건 화려한 무대장치가 없는 썰렁함을 채우려는 수단이었는데, ‘고육지책’은 ‘전화위복’이 됐다. 무대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져 무대 위·아래, 좌·우에서 뛰어나오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생동감 있게 와 닿았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배우들이 쏟아내는 에너지가 무대를 꽉 채워 드라마의 몰입에 오히려 도움이 됐다. 공연제작사 수키컴퍼니 변숙희 대표는 지난 7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제작자로서 부족한 면 때문에 계획하고 생각했던 방향성이 틀어졌다. 그런데 오히려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전화위복이 됐다. 창작진, 스태프, 주·조연 배우, 앙상블이 부족한 점을 다 채워줬다”며 감사해 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수키컴퍼니 제공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수키컴퍼니 제공
36부작 대하드라마를 135분(인터미션 제외)에 담은 뮤지컬은 시공간을 크게 압축해 일제강점기에 학도병과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온 대치와 여옥이 만나는 군부대,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열리는 재판소, 제주 4·3항쟁 당시 제주도에 집중한다. 시대의 변화는 무대 뒤 영상과 앙상블을 통해 전달한다. 앙상블 배우들은 일제 통치에 고통받는 무고한 양민이었다가, 만세운동을 하는 민중이었다가, 해방 후 좌우대립 이념에 갈라선 군중 등으로 변하며 시대의 간극을 메웠다.

소품도 일당백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춰 제 몫을 톡톡히 했다. 무대 양옆에 줄지어 놓인 12개의 의자는 식당 테이블·고문 의자 등으로 쓰이고, 평상은 여옥의 위안소 침상이었다가 4·3항쟁이 일어나기 전 제주도민들의 평온한 일상 속 잔칫상이 되기도 했다. 뮤지컬은 굴곡진 현대사를 영리하게 잘 압축하면서 대치와 여옥의 ‘철조망 키스’, 눈밭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 여옥을 안아 들고 우는 대치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하림의 모습 같은 명장면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드라마 속 각 인물의 메인 테마곡을 떠올리게 하는 웅장하면서 애절한 음악도 배우들의 연기와 잘 어우러졌다.

<여명의 눈동자>는 어려운 제작여건 속에서 뮤지컬 본령인 음악과 연기로 승부하며 기대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3·1운동 100주년 기념공연이라는 외피에 신경 쓴 탓인지 역사적인 서술에 눌려 세 인물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순간의 선택과 고민을 세심하게 담지 못했다. 2막에선 대치가 드라마에서처럼 왼쪽 눈에 상처를 그리고 나오는데 드라마를 기억 못 하는 이들은 이 상처가 왜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배우들의 호흡을 따라올 수 없는 반주 음악, 자막 수준의 영상 역시 아쉽다. 런웨이 방식의 긴 무대엔 시야 방해석도 많아 제작사는 티켓값을 대폭 낮춰 미안함을 표시했다. 3~7만원 수준으로 다른 대극장 공연의 반값 정도다. 공연은 4월14일까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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