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원래 오늘 칼럼의 주인공으로 생각했던 주인공은 다른 팀이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빅뱅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서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빅뱅 얘기다. 일단 차분하게 시작해본다.
먼저 밝히고 싶다. 필자는 빅뱅의 대단한 팬이었다. 20년 동안 방송사에 근무하면서 매일 연예인들을 봤지만 그중에서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그중에서도 남자 아이돌 그룹은 빅뱅이 유일하다. 걸그룹은… 꽤 있다. 흠흠. 하여튼 빅뱅은 데뷔 시절부터 최근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팀이었다.
빅뱅이라는 단어는 팀 이름으로 쓰기엔 너무 뜻이 거창하다.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이니 이보다 더 창대할 수 있겠는가. 2006년에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에서 빅뱅을 내놓았을 때 나는 <허수경의 가요풍경>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 프로그램에 신인 그룹으로 출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탑을 제외한 멤버 전원이 미성년자였는데 이런 꼬맹이들한테 빅뱅이라는 이름이 너무 거창하지 않으냐며 허수경 누나하고 키득거렸던 기억도 난다. 우리가 틀렸다. 전혀 거창하지 않았다. 솜털 보송한 아이들이 마이크 앞에서 수줍게 데뷔를 알리던 그 순간이 우리 가요계의 빅뱅이었다.
우주에서는 빅뱅 전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지만 가요계의 빅뱅은 데뷔 전에 긴 준비 기간이 있었다. 멤버 지드래곤(이하 지디)과 태양은 무려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습생으로 춤과 노래를 연마했다. 거기에 탑과 승리, 대성이 합류했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명의 멤버 후보가 더 있었다. 나중에 비스트 멤버가 된 장현승이 마지막에 제외되면서 다섯명 체제로 빅뱅은 데뷔했다.
데뷔 1년 뒤 정말 거짓말처럼 ‘거짓말’이라는 노래가 전국을 휩쓸었다. 내친김에 연이어 발표한 노래 ‘마지막 인사’ 역시 광풍이었다. 멜론 음원차트에서 무려 8주 동안 1위 자리를 지켰는데, 1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필자가 여전히 가요 프로그램을 연출하던 때여서 잘 안다. 2007년은 그 누구의 해도 아닌 빅뱅의 해였다.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래 그 시절 빅뱅만큼 열광적인 인기를 누린 팀을 알지 못한다. 이듬해인 2008년은 더했다. ‘하루하루’도 대단했지만 이문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붉은 노을’은 그야말로 국민가요 반열에 올랐다. 2년 동안 네 곡의 메가 히트곡을 연이어 내놓고 나니, 그 시절 라디오 신청곡의 절반은 빅뱅의 노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 힙합그룹으로 포장되어 나왔다가 팝 댄스 장르에 맛깔 나는 랩을 얹은 노래들로 방향을 튼 전략이 대성공이었다. 멤버들의 역할 배분도 완벽하다. 래퍼가 두명인데, 저음과 거친 랩을 탑이 담당하고 고음과 도발적인 랩을 지디가 담당한다. 노래는 태양이 중심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보컬리스트임이 분명한 태양은 소울과 아르앤비의 세례를 듬뿍 받은 창법으로 노래한다. 노래를 거드는 대성은 직선적이고 힘 있는 록 창법을 구사한다. 음의 색이 이렇게 다양하니 지루할 틈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지디는 거의 대부분의 노래를 만드는 걸출한 작곡가. 힙합과 일렉트로니카 장르에서는 최고 수준의 작곡 실력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발라드에 있어서도 감각이 탁월하다. 심지어 대성이 불러서 세대 초월의 인기를 얻은 트로트 ‘대박이야’마저 지디가 만든 노래라는 사실. 탑이나 태양 역시 자기 솔로 음반은 물론이고 빅뱅의 노래에도 작사 작곡에 참여하는 뛰어난 송 라이터들이다. 승리는? 막내였다.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우뚝 선 2008년 이후, 조금 이르다 싶은 시기에 멤버들이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각자 티브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탑은 배우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이뤄냈다. 곧장 주연급 배우로 올라섰으니 윤계상 이후 가장 성공한 아이돌 출신 배우가 될 ‘뻔’했다. 완전체로서는 공백기가 상당히 긴 편이었지만 컴백만 하면 바로 왕좌를 차지했으니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판타스틱 베이비’ ‘블루’ ‘몬스터’ 등등 히트곡도 계속 쏟아냈다. 2012년에는 거의 1년 내내 월드투어를 돌았는데 공연 수익이 800억원에 이른다는 기록도 있었다. 매출이 아니라 수익이. 참고로 우리 에스비에스(SBS)의 작년 영업이익이….
여기까지만 해도 전설의 반열에 오르고도 남을 활동이지만 그들의 진짜 전성기는 2015년에 찾아왔다. 전 곡이 타이틀곡인 노래들을 차례로 발표하는 방식으로 <메이드> 음반을 내놓았다. 필자에게 21세기 가요계의 최고 명반을 꼽으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 음반을 꼽는다. ‘에라 모르겠다’ ‘베베’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 ‘뱅뱅뱅’ ‘루저’… 11곡의 음반 수록곡이 모조리 히트곡이다. 장르는? 힙합에서 일렉트로니카, 칠아웃 계열의 발라드까지 넘나든다. 노래의 틀은 팝의 최신 트렌드를 망라하면서 우리 한글의 매력을 한껏 살린 가사를 대담하게 붙여버렸다. 찹쌀떡 타령을 이렇게 세련되게 듣게 될 줄이야. 음반 발매 뒤 이어진 유닛과 솔로, 월드투어 등 모든 활동이 대성공이었다. 뭘 해도 되는 팀이었고 어떤 악재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찬사는 여기까지.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는 지디의 노래 가사가 예언이었을까? 빅뱅의 몰락 그리고 가요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인 버닝썬 사건에 대해서는 다음에 계속.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정치쇼 진행자
이재익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이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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