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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모모와 로자가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등록 2019-02-24 11:03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쿠르상 로맹 가리 소설 각색
국내 첫선…명동예술극장 내달까지
연극 <자기 앞의 생>. 국립극단 제공
연극 <자기 앞의 생>. 국립극단 제공
프랑스 파리 빈민가의 한 아파트. 이곳에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랍계 소년 모모와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유대인 할머니 로자가 함께 산다. 폴란드 출신의 이민자인 로자는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젊을 때 홍등가를 전전했고, 독일 아우슈비츠에서 생사를 넘나들기도 했다. 자격증 없이 아이를 돌보는 그는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벌벌 떤다. 사회복지사가 들이닥칠까, 독일군이 찾아온 건 아닐까 두려워서다. 인종차별을 받아 학교에서 퇴학당했다고 생각하는 모모에겐 아파트 주변과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선생님이고 친구다. 하지만 로자는 모모가 만나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처럼 모모가 “궁둥이로 벌어 먹고살”거나 술과 마약을 할까 봐서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건 훌쩍 커버린 모모가 어느 날 자신을 떠나는 것이지만….

연극 <자기 앞의 생>은 러시아 이민자 출신의 유대인 로맹 가리(1914~1980, 필명 에밀 아자르)가 쓴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이민자이자 유대인인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소설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프랑스 ‘콩쿠르상’을 받았다. 2007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연극 역시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있는 연극상인 ‘몰리에르 어워드’에서 최고작품상, 최고각색상 등을 받은 수작이다. 국내에서는 국립극단이 첫선을 보인다.

무슬림 아이를 돌보는 유대인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통해 외로운 삶을 서로 의지하는 두 사람을 비추는 연극은 원작의 감동을 고스란히 무대로 옮겼으나 밀도가 조금 다르다. 소설은 모모와 로자 외에 아파트 주변 사람들 같은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연극은 모모와 로자, 로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주는 의사 카츠, 모모의 무슬림 아버지만 등장한다. 소설의 에피소드를 압축한 희곡은 모모와 로자의 관계에 오롯이 집중한다. 모모가 학교에서 겪은 일, 강아지를 키우는 일, 로자가 돌봤던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가진 아이들 이야기 등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인종, 종교, 세대를 뛰어넘는 건 사랑 뿐’이라는 인류애를 담백하게 전달한다. 특히 엄마를 살해한 아빠에게 모모를 보내지 않으려는 로자, 병원에 입원해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로자를 지켜주는 모모의 모습에서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이 읽힌다. 박혜선 연출가는 “불우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 자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하며 사는 이야기다. 나이가 많아 떠나는 사람과 남겨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이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극은 프랑스의 희곡 원작만 가져왔을 뿐 무대연출, 의상 등은 모두 한국 제작진이 창작해 넣었다. 박 연출가는 “번역극의 보모와 돌봄아이라는 이질적인 관계가 할머니와 손주같은 느낌으로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신경썼고, 관객들의 몰입을 위해 로자의 아파트 공간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면서 세트를 객석에 가깝게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슬픈 결말에도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건 배우들의 열연이다. 로자 역할은 배우 양희경과 연극 <텍사스고모>로 올해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이수미가 맡았다. 나래이터이자 모모 역은 연극계에서 두꺼운 팬층을 보유한 배우 오정택이 연기한다.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3월23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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