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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김규리 “인생이 늘 쓰진 않다는 것, ‘소통’으로 전하고 싶어요”

등록 2019-02-15 07:59수정 2019-02-15 16:58

25일부터 tbs 라디오 DJ로 활동

MB정권 시절 블랙리스트에 올라
빛나려던 30대 어둠 속에서 보내
10년 동안 민화·독서 등으로 위안
저예산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

“택시 기사님들 응원에 행복 깨달아
나도 타인도 따뜻해질 거란 기대감
라디오 방송이 큰 선물 될 거 같아…
벌써 ‘귤디’라는 애칭도 생겼어요”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싶다”는 배우 김규리가 13일 서울 상암동 <교통방송>(tbs)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25일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싶다”는 배우 김규리가 13일 서울 상암동 <교통방송>(tbs)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25일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나. 13일 배우 김규리를 만나면서 내내 든 생각이다. 웃음소리도 호탕했다. “하하하하하. 많이 웃고 좋은 말 하나 더 하면 분위기가 달라지잖아요. 많이 웃고 살려고요.”

그에게 요즘 더 웃음을 주는 일이 생겼다. 25일부터 <교통방송>(tbs)에서 매주 월~금요일 오전 9시 라디오 디제이(DJ)로 나선다. 라디오 진행은 2000년 이후 두번째다. 제목도 콘셉트도 확정된 건 없지만 얼굴에 설렘이 가득하다.

“재미있게 놀았으면 좋겠어요. 벌써 ‘귤디’라는 애칭도 생겼고요. 귤을 김에 싸고 ‘김귤?’이라고 한다거나 시장에서 귤을 고르며 이 귤도 아니고 저 귤도 아니고 ‘김귤?’이라고 하는 영상 같은 걸 찍어 홍보하는 건 어떨까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데,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진다.

배우의 디제이 변신이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귤디의 탄생’은 유독 관심이 간다. 그의 지난 시간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두고 ‘청산가리’ 발언을 한 2008년 5월 이후부터 9년5개월간 배우로서 불이익을 당했다. 왜 일이 안 들어오는지 본인도 몰랐는데 2017년 9월,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이 밝혀지면서 이유를 알게 됐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분노했지만, 어떤 말로도 그의 시간을 보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배우로서 힘찬 날갯짓 하던 30대를 잃어버렸다. 김규리는 1999년 영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로 데뷔한 이후, 2000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2001년과 2002년 방송사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출발했다. 2004년 임권택 감독 영화 <하류인생>, 2005년 드라마 <영재의 전성시대> 등에서 주연을 맡는 등 배우로서 자리매김하던 차였다.

배우 김규리. 박종식 기자
배우 김규리. 박종식 기자

하지만 그는 담담했다. “언젠가 인생이 너무 써서 고통스럽다고 발버둥 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요한 것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잠깐 쓴 것을 먹었기에 쓴맛이 나는 건 당연하다. 인생이 늘 이렇지는 않다.” 그는 ‘블랙리스트 유폐 기간’ 동안, 민화를 배우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많이 걸었다. 스스로 헤쳐나갈 힘을 얻기 위해 저예산 영화 <하하하> <또 하나의 약속> <사랑해! 진영아> 등에도 출연했다.

그는 “혼자 움츠리고 있던 시간이 길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양지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라디오 디제이를 맡기로 결심한 이유도 ‘소통’을 들었다. “사람들 속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면 저도 다른 사람들도 따뜻해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어요. 한때 너무 고통스럽고 아파서 ‘혼자라도 괜찮아’라며 도망간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들이 응원한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때 행복감이 밀려오며 깨달았어요.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구나라고. 라디오 방송을 하는 한 시간이 제 인생에 아주 큰 선물을 줄 것 같아요.”

‘소통’에 대한 열망은 그가 앞으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주고 싶은 이유다. “요즘 편지가 사라졌잖아요. 손편지 대신 목소리 편지를 보내는 걸 하고 싶어요. 클로징으로 (시청자들이 보내오는) 시를 읽어드리고도 싶고. 영화나 드라마 홍보할 때 배우나 감독 말고 막내 스태프의 시각으로 본 작품을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는 “답답하고 힘들 때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며 “늘 감사하는 마음, 자연을 가까이 하는 생활 등 그동안 배운 삶의 태도나 마음 가짐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 김규리. 박종식 기자
배우 김규리. 박종식 기자
직접 만나 본 김규리는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깊고 차분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정적인 사람 같았다. 그림을 그리고 댄스 뮤지컬에 출연하고 새벽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한다. 인터뷰 당일에도 “언니가 만들고 내가 포장한” 쿠키를 선물로 가져왔다. 예술적 재능의 비결을 물으니 “시간이 많아서”라며 또 호탕하게 웃는다. “인생이 즐겁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확실한 건 그는 점점 강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제게는 지금이 가장 찬란한 순간입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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