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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성북동 복귀’ 시험대 오르는 간송

등록 2019-01-09 04:59수정 2020-02-16 16:20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간송컬렉션, DDP전시 3월 마무리
수익사업 무리수로 공신력에 흠집
거액 상속세·취득세 납부 문제와
‘90일 이상 상설전시’도 해결 과제
서화 등을 한 영역에서 선보이고 있다.
서화 등을 한 영역에서 선보이고 있다.

서울 종로 배오개의 청년갑부였던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식민지시대 불멸의 영웅 컬렉터 신화를 창조한 인물이다. 그는 민족혼의 산물인 문화재 수집으로 ‘문화광복’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는 신념에 투철했다. 1920년대말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일본에 유출되거나 불쏘시개가 될 뻔했던 이 땅의 전통 서화, 도자기 명품 수천여점을 온 재산을 털어 사들인 뒤 전혀 팔지않고 보존했다. 1938년엔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 보화각(1966년 간송미술관 개칭)을 성북동 골짜기 어귀에 세웠다. 그 전해 일제는 우리말 교육을 없애고 학병을 동원하며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는 중이었다. 군국주의 광기에 맞서 문화유산을 지킬 보루를 세워야한다는 혜안으로 간송은 어려운 시절 사재로 미술관을 만들고 수집한 보화들을 올올이 채워넣었다. 그의 스승이자 조언자였던 감식가 오세창은 ‘만품(萬品)이 뒤섞이어 새 집을 채웠구나…천추의 정화로다’라고 보화각 주춧돌에 자부심 어린 정초명을 적어넣었다. 그리고 그 터전에서 고인의 사후 9년만인 1971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42년간 독보적인 봄가을 기획전이 85차례나 열렸다. 전시들은 조선미술사를 다시 쓰고 재조명하는 또다른 역사가 됐다. 간송의 두 아들 전성우 전영우 형제의 조력 아래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과 수하 ‘간송학파’라고 불리는 연구자들은 조선 후기 이땅의 산하와 풍속, 사람들을 개성적으로 포착한 이른바 진경시대 미술을 우리미술사의 유력 담론으로 만들어냈다.

간송컬렉션의 대표적인 도자기 명품인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국보). ‘대한콜랙숀’전의 소장품 전시장 들머리에서 관객을 맞고있다. 간송이 1935년 일본인 수집가로부터 당시 기와집 20채 값인 2만원을 주고 구입했다는 내력이 전해진다.
간송컬렉션의 대표적인 도자기 명품인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국보). ‘대한콜랙숀’전의 소장품 전시장 들머리에서 관객을 맞고있다. 간송이 1935년 일본인 수집가로부터 당시 기와집 20채 값인 2만원을 주고 구입했다는 내력이 전해진다.

이렇게 오랜 세월 흐트러짐 없이 반석을 닦은 간송 컬렉션이 새해 또다시 문화계의 관심사로 떠오를 듯하다. 2013년 설립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말많았던 5년간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디디피) 전시 더부살이를 지난 4일 개막한 ‘대한콜랙숀’ 전(3월 31일까지)을 끝으로 마무리한다. 간송컬렉션 주축을 이루는, 영국인 존 개츠비가 소장했던 도자 명품들과 경성구락부 경매에서 구입한 서화·도자기 등을 각각의 수집 일화들과 엮어 선보이며 간송의 문화구국 의지를 부각한 전시다. 재단은 이르면 올 가을부터 성북동 간송미술관으로 복귀해 많은 많은 관람객들로 유명했던 봄·가을 기획전을 재개하기로 했다. 미술관 아래에 수장고·연구동 등을 짓고, 기존 미술관은 전시관으로만 쓴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5년간의 디디피 기획전들은 ‘간송이 무너졌다’는 한탄이 나올 만큼 소탐대실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상업적이고 현란한 디자인 이미지 컨셉트가 중심인 공간에 충분한 검토 없이 품격과 권위를 지닌 전통 컬렉션을 들여와 수익 사업을 하려한 무리수가 패착이 됐다. 고액 입장료를 받으면서도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거장 명품들을 포장지처럼 얕은 테마로 엮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진부한 짜임에 발길은 잦아들었다. 지난해 ‘훈민정음과 난중일기’전처럼 외부 대여유물이 전량 복제품으로 채워져 간송재단 쪽이 사과하는 초유의 불상사가 벌어지며 컬렉션의 권위와 공신력에 큰 흠결이 생겼다.

‘국민 전시’로 회자됐던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명품 전시 재개는 반갑다. 하지만, 앞날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지난해 4월 간송의 장남 전성우씨가 별세하면서 손자 전인건씨가 운영을 이어받았지만, 거액이 예상되는 상속세, 취득세 납부란 난제를 통과해야 한다.

간송이 1946년 보성학교 학생들에게 읽어주려고 직접 옮겨 적은 기미년 3·1독립선언서. 전시장에 고인의 유품으로 나왔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간송이 1946년 보성학교 학생들에게 읽어주려고 직접 옮겨 적은 기미년 3·1독립선언서. 전시장에 고인의 유품으로 나왔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간송가는 지난해 하반기 서책과 서화 등으로 구성된 컬렉션의 90% 이상을 재단에 귀속시켰다. 그리고 지난해 하반기 서너달 동안 전문가들을 불러 컬렉션 가치를 평가액으로 산정해 세무당국에 신고했다고 한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미술관 등록 작업도 추진중이다. 전인건 관장은 “세금 부담을 감안해 나름의 자구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세간에서 천문학적인 금전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컬렉션 서화들을 개인 소장으로 계속 유지할 경우 부가되는 상속세 압박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세무당국은 올 상반기 간송재단 쪽이 통보한 평가액을 검토해 실사한 뒤 부과액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간송재단 쪽은 긴장하고 있다. 거액이 부과될 경우 열악한 재단 운영이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또 법적으로 미술관으로 등록하면 해마다 90일 이상 상설전시를 해야하므로, 봄·가을 간송미술관에서 열 정기기획전도 최소한 각각 45일씩은 해야한다. 3주 정도였던 과거의 전시 기간을 훨씬 초과하기 때문에 보안 인력, 전시기획 전문인력이 더 필요하고, 전시 양상도 상당히 바뀔 것으로 보인다. 과거 기획전시를 도맡았던 산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연구자들과는 어떤 교감을 이루며 달라진 전시어법을 보여줄지도 관심사다. 간송은 일제강점기 물자반출이 거의 불가능하고 양곡반입도 통제되는 상황에서 성북동에 순백의 문화유산 전당을 문화광복의 집념으로 구현해냈다. 간송가에 닥친 난제들을 후손들이 지혜롭게 대처해나갈지 문화계가 지켜보고 있다.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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