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뮤지컬계엔 ‘클래식의 거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모차르트!>(2010년 초연) <살리에르>(2014년 초연) <라흐마니노프>(2016년 초연)에 이어 지난해엔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파가니니>가 새롭게 선보였고 슈베르트를 소재로 한 <죽음과 소녀>도 현재 무대화를 준비 중이다.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음악. 클래식의 고전들을 뮤지컬의 음악언어로 ‘통역’하는 작업은 녹록지 않지만 한편으론 거장들이 표현한 탁월한 멜로디와 강렬한 분위기 때문에 뮤지컬 작품의 수준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리기도 한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아담스페이스 제공
■ 피아노 한 대로 표현한 교향곡 <루드윅> 오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제이티엔아트홀에서 선보이는 창작뮤지컬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이하 루드윅)는 베토벤과 동생의 아들인 조카 카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창작된 팩션드라마다. 베토벤이 지인에게 마치 유서와 같은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하는 작품은 실제 베토벤이 카를을 아들로 입양하고 그를 수제자로 키우려 했던 빗나간 사랑을 재구성했다. 베토벤의 생애와 청력 상실로 인한 좌절, 음악에 대한 불굴의 열정이 상상을 덧붙여 펼쳐지는데 베토벤이 작곡한 다양한 음악이 뮤지컬 넘버(노래)에 녹아있다. <루드윅>의 허수현 음악감독은 “베토벤의 음악은 너무 유명해 가사를 붙이기도 어려웠다”면서 “창작한 넘버에 베토벤의 음악 몇 마디를 인용했고, 소극장 규모에 맞춰 피아노 한 대로 음악을 표현해냈다”고 말했다.
뮤지컬은 피아노 소나타 ‘월광’과 ‘비창’, 교향곡 ‘운명’과 ‘합창’ 등을 주요 넘버에 접목해 사용한다. 베토벤이 청력을 상실하고 괴로워하며 청년 시절의 자신과 함께 부르는 ‘시련’은 ‘월광’ 1악장과 3악장 일부를 따왔다. 기존 소나타 형식을 버리고 환상곡풍의 자유로운 형식으로 편곡해 삽입했다. 베토벤이 자신의 관에 검은 천을 씌우고 퇴장할 땐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쓴 ‘비창’이 연주된다. 허 감독은 “극의 앞뒤에서 슈베르트로 등장하는 배우 겸 피아니스트인 강수영씨가 공연 내내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면서 “교향곡을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할 때 소리의 빈 곳은 조명과 음향 등 무대 메커니즘으로 채웠다”고 말했다.
■ 바이올리니스트가 연기하는 <파가니니> 지난달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먼저 선보인 뮤지컬 <파가니니>는 파가니니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릴 수밖에 없었던 사건에 집중한다. 1840년 프랑스에서 숨을 거둔 파가니니가 교회의 반대로 고향인 이탈리아 제노바 땅 교회 묘지에 묻히기까지 36년이 걸린 실화를 바탕으로 파가니니의 아들 아킬레가 교회 공동묘지 매장을 불허하는 교회에 맞서 법정 싸움을 시작하며 이야기를 펼친다.
기교가 뛰어난 연주자였던 파가니니는 실제 바이올린 연주가 가능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배우인 콘이 연기한다. 연주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뮤지컬 넘버의 50%를 연주하며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를 찾는 데 공을 들여 캐스팅했다. 기타, 건반, 드럼, 바이올린 등으로 구성된 7인조 밴드가 콘과 연주를 함께 한다. <파가니니> 임세영 음악감독은 “연주는 콘서트장 쇼처럼, 드라마는 연극처럼 보여주자는 게 연출자의 의도였다”면서 “중극장 규모의 뮤지컬에 맞춰 악단을 편성했고 뮤지컬 넘버들은 파가니니 특유의 빠르고 거친 음악과 함께 전자음악 사운드를 가미해 작곡했다”고 말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파가니니의 대표곡인 ‘24개의 카프리스’와 ‘바이올린 협주곡 2번-라 캄파넬라’를 섞은 ‘서곡’이 연주된다. 파가니니가 무덤 앞에서 외롭게 서서 홀로 3분가량 연주하는 ‘소외당한 자들의 노래’는 파가니니의 ‘마녀의 춤’을 인용했다. 임 감독은 “파가니니의 음악에 확신이 있었던 만큼 그의 음악을 손상하거나 왜곡할까 봐 걱정하며 뮤지컬 노래를 만들었다”면서 “관객들 역시 바이올린 연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가 2~5분가량 독주를 들려주고 애드립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말했다. <파가니니>는 대전에 이어 오는 2월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 대중적인 인지도 높은 음악가의 일생과 음악이 큰 장점 어린 시절의 혹독한 음악 교육, 건강악화로 인한 생활고, 음악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한 좌절 등 드라마틱한 음악가들의 생애와 그들이 만든 위대한 유산인 음악이 장점인 뮤지컬들은 그동안 성공적으로 공연계에 안착해왔다. 지난해 재연에 성공하고 중국까지 수출된 <라흐마니노프>는 첫 교향곡으로 혹평을 받고 우울증에 걸린 라흐마니노프가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과 함께 보낸 넉달을 그렸는데, 피아노 한 대와 현악 6중주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등을 인용해 만든 넘버들을 연주했다. <살리에르> <라흐마니노프>를 맡았던 이진욱 음악감독은 “음악 거장들의 작품을 뮤지컬로 만들 땐 음악이 너무 유명해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고 작곡을 새로 하기도 까다롭다”면서 “반면 음악이 유명하기에 관심도 더 많은 만큼 음악을 즐기려는 관객들과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공연제작사 라이브가 스토리공모전에서 발탁한 <죽음과 소녀>도 죽음을 앞둔 슈베르트의 여정이라는 극적인 요소를 뼈대로 했고, 잘 알려진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 ‘마왕’ 등을 원곡 그대로 사용하거나 창작곡에 녹여냈다.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는 “실화를 바탕으로 인지도 있는 인물을 그리다 보니 대중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잘 알려진 선율의 음악을 사용하면서 저작권료가 들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면서 “그러나 팩션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실제 삶과는 다르다는 점은 감안하고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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