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엔 달이 뜨지 않았다/ 새벽이 더 새벽다워졌다/ 고요하고 적막해서/ 그대 생각하는 마음마저/ 숨죽여 떠올린다/ 보고픈 마음 혹시라도 들킬까/ 그대도 행여 나처럼 오늘 하루를/ 달을 보며 새벽에 들진 않을까/ 오늘 새벽엔 달을 띄우지 않았다”
시 ‘오늘 새벽엔 달이 뜨지 않았다’의 한 대목이다. 시인이 누굴까? 떠오르지 않는 게 당연하다. 공개되지 않은 시니까. 10인조 멀티테이너 그룹 ‘더 맨 블랙’ 멤버인 최찬이(23)가 쓴 시다. 더 맨 블랙은 배우들이 노래도 하는 이른바 배우 그룹이다. 엄연히 말하면 ‘아이돌’보다는 ‘배우’에 가깝지만, 그룹으로 무대에 설 때는 ‘아이돌’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는 내용 같은데 지난 11월19일 새벽, 숙소에서 엄마를 그리며 썼다. “새벽에 집에 계실 어머니 생각하면서 썼어요. 보고 싶고 걱정되고 그런 마음? 제가 부모님 생각하는 새벽에 부모님도 아들 생각에 잠 못 들고 있을까, 걱정되어서요.”
지난 10월 데뷔한 최찬이는 두달간 시 14편을 썼다. 숙소에서 차에서 대기실에서 끄적였다. 그는 시 쓰는 걸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 시간에 시를 배운 뒤 줄곧 시를 읽고 써왔다. 지금껏 약 60편을 썼다. 그는 “시집을 내고, 시 전시회를 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시를 읽고 쓰는 아이돌들이 눈에 띈다. 많은 이가 책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드는 시대에, 화려하고 분주한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활동하면서 시를 읽고 쓰는 이들의 생각과 마음이 궁금해진다.
에스에프나인(SF9) 로운(23)도 요즘 시와 사랑에 빠졌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그는 최근 시집을 읽고 직접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껏 두편을 썼다. ‘처음’이 처음이다. “사랑의 아픔과 기쁨도 다 처음이 아닌 줄 알았는데, 처음이었다는. 내가 이제까지 알던 감정은 다 진짜가 아니었다, 진짜 사랑을 깨닫는다 그런 이야기예요.” 지난달 26일 종영한 드라마 <여우각시별>(에스비에스) 대본을 읽다가 새벽에 썼다. 극중 그는 친구를 짝사랑하는 남자를 연기했다. 그 감정을 시로 표현한 셈이다.
트와이스 채영도 시 쓰기에 빠졌고, 아이콘 구준회도 직접 쓴 시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있다. 시노트가 따로 있다. 지금껏 200편이나 썼다. 비 내리는 한강 공원에 앉아 있다가도, 치킨을 먹으면서도 시상을 떠올린다고 한다.
이들은 시가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로운은 시가 “보물찾기 같다”고 한다. “시는 그 의미가 친절하게 다 나와 있지 않잖아요. 속뜻을 조금씩 찾아내는 게 보물찾기 같아요.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면 대본을 이해하거나 가사를 표현하는 데도 도움이 돼요.”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해야 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 시만한 게 없다는 뜻이다.
시는 어렸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며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이들을 보듬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최찬이는 “감정 표현을 잘 못 하고,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는데 그걸 시로 풀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도 처음에는 시를 읽는 게 쉽지 않았다. 로운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눈에 잘 안 들어왔어요. 바로바로 이해가 안 되니까 진도가 잘 안 나갔죠. 하지만 시는 마음을 느긋하고 편하게 먹고 읽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뭔가 풍부해지고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구준회는 예능에 나와 시를 읽고 쓰는 이야기를 했다. 프로그램 갈무리
시를 읽는 행위는 시나브로 그들을 단단하게 만든다.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하나하나 음미하는 것은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획사에서 연기를 가르친 한 배우는 “단어의 뜻을 몸으로 표현해보면 훨씬 깊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습관도 생겨서 화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책 <시 읽는 시이오(CEO)>를 보면 스티브 잡스의 영감은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와 맞닿아 있고, 음향기기를 만드는 하먼 인터내셔널 인더스트리 설립자 시드니 하먼은 집에 들어가면 책, 특히 시집을 펼친다고 나온다. 책은 시가 창의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열쇠라고 해설한다. 자기 창조의 보고인 시를 읽는 이들이 표현해낼 앞으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최찬이는 시를 잊은 우리에게 “그래서 시를 읽자”고 말한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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