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스크린의 스타는 10년 만에 돌아온 무대를 휘어잡았다. 2시간 내내 허리를 굽히고, 발을 절고, 손가락을 구부리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연기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리차드 3세>에서 한달간 ‘리차드’로 산 황정민이다. 그가 이번에는 ‘오이디푸스’가 된다. 내년 1월29일 개막하는 연극 <오이디푸스>(예술의전당)에서다.
그의 연극 출연은 <리차드 3세> 이후 1년 만인데, 사실 1년 만에 다시 무대 위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바쁜 스타들의 연극 출연은 ‘단발성 이벤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11일 제작발표회에서 “1년에 한 작품이라도 연극을 꼭 하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 사람이 여기 또 있다. 몸이 두개라도 아쉬운 강신일도 연극 두편에 출연한다. 오는 25일까지 공연하는 <록앤롤>(명동예술극장)과 내년 1월6일 시작하는 <레드>(예술의전당)다. <록앤롤>은 체코 정치사를 록음악과 연관 지어 자유의 의미를 묻고, <레드>는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와 제자 켄이 등장하는 2인극이다. 올해만 드라마 <스케치>부터 <미스터 션샤인> <나인룸>등에 출연했다. 일일드라마 <비켜라 운명아>에도 나오고 있다. 내년 개봉하는 영화도 촬영 중이다. 낮에는 <레드> 연습과 드라마 촬영, 밤에는 <록앤롤> 공연과 영화 촬영을 한다.
송일국은 2011년과 2014년 <나는 너다>부터, 2016년 <브로드웨이 42번가>, 2017년 <대학살의 신> 등 꾸준히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내년 2월16일 막 올리는 <대학살의 신>(예술의전당)에 다시 나온다. 놀이터에서 싸운 11살 두 소년의 부모들 이야기로, 교양의 허울을 벗겨내면 인간이 얼마나 속물적인 존재인지를 풍자한다. 정보석도 강신일과 함께 <레드>에 출연한다. 올해만 드라마 3편에 나왔던 정보석은 2011년 <민들레 바람되어> 이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른다. 내년 1월27일까지 선보이는 <그대를 사랑합니다>(아트원씨어터)에 출연 중인 이순재는 올해만 연극을 네편이나 했다.
연극은 유명 연예인인 이들이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할 때보다 긴장감은 더한데 금전적인 가치는 덜하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자꾸 무대에 오르는 걸까. “돈 이상의 가치가 있어서”(이순재), “초심으로 돌아가 연기의 열정과 기본을 다지고 싶어서”(황정민)라는 답이 돌아온다. 비슷한 역할이 많아지는 대중매체와 달리 연기 의욕을 부추기는 다채로운 인물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의 의지를 자극한다. 리처드 3세나 오이디푸스처럼 기막힌 인생을 산 캐릭터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내는 쾌감이 크다. ‘무대에 있을 때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고 배우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다. 배우로서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다. 황정민은 “나중에 후손들이 ‘내가 어릴 때 ‘황정민의 오이디푸스’라는 극을 봤는데 이에 견줄 만한 작품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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