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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노동자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자본가여, ‘호신술’을 배워라

등록 2018-12-10 11:11수정 2018-12-10 20:34

카프 출신 송영의 1930년대 희곡 ‘호신술’
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탐욕스러운 자본가를 연극적 풍자로 표현
연극 <호신술>. 국립극단 제공
연극 <호신술>. 국립극단 제공
“다 떨어진 중절모자 빵꾸난 당꼬바지/ 꽁초를 먹더래도 내 멋이야/ 댁더러 밥 달랬소 아, 댁더러 옷 달랬소/ 쓰디쓴 막걸리나마 권하여 보았건디~”

연극 <호신술>의 시대 배경은 1930년대다. 극장 안에 들어서면 시대를 설명하듯 당시 인기 가수이던 김해송의 노래 <개고기주사>가 울려 퍼진다. 연극이 시작되면 직조공장을 운영하는 공장주 김상룡의 집 거실로 꾸며진 무대에 두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비대한 몸의 두 남자는 덩실덩실 춤을 추더니 공중에 돈다발을 흩뿌린다. 배부른 자본가를 풍자하듯 뚱뚱한 공장주 가족들이다. 김상룡과 그의 가족들은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이 마뜩잖다. “어떻게 없는 놈일수록 똑같이 노나 먹자는 수작만 한담”이라고 흉보며 노동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호신술’을 배우기로 한다. 하지만 걷기도 힘든 몸으로 호신술을 익히는 게 만만할 리 없다. 엎어치기 한판에 반대편으로 나가떨어지는가 하면, 와이어를 타고 허공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제대로 써보지도 못할 호신술을 진지하게 배워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연극 <호신술>. 국립극단 제공
연극 <호신술>. 국립극단 제공
연극 <호신술>은 이처럼 노동자 파업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호신술을 배우는 공장주 가족 이야기다.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작가 송영의 대표작으로, 국립극단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를 통해 무대에 올렸다.

희곡이 발표된 1931년은 세계 대공황이 찾아온 시기였다. 임금 삭감과 해고로 손해를 충당하려고 했던 자본가와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 간의 대립이 치열하던 때다. 그 시대 노동극들은 사회 분위기를 담아 노동자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많았는데, <호신술>은 반대로 자본가를 극 전면에 내세워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대립을 간접적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연출을 맡은 윤한솔 연출가는 70분짜리 원작의 재미를 연극적인 장치를 사용해 극대화했다. 빈곤층과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자본가의 모습을 탐욕을 두른 듯 비대하게 설정하고, 응급환자를 미루고 건강검진을 해주러 달려온 의사와 입에 음식이 가득 든 공장주 가족의 말을 대신 전하는 변호사를 자본에 빌붙은 군상으로 그린다. 한편 “간장공장 공장장은 간 공장장이고 직조공장 공장장은 김상룡 공장장~” 식으로 만담하며 자본가를 비웃는 하인들은 쉴 새 없이 일하는 노동자를 대변한다.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는 공장주 가족들을 때마다 일으켜 세우고, 무대를 청소하며, 실제 조명 스태프처럼 조명기기를 잡아 무대 위 배우를 비추며 바삐 다닌다. 윤 연출가는 “처음 희곡을 읽었을 때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실체 없는 공포’에 떠는 공장주 가족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임금이나 노동시간에 관한 문제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우스꽝스럽고 어색하게 보이는 연극적 장치들을 통해 작품이 가진 해학적인 요소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말투와 노래로 시대극 분위기를 한껏 살려 해학적인 재미가 있지만 이야기가 단선적이다 보니 통쾌한 맛은 부족하다. 김형 연극평론가는 “원작 자체가 짜임새가 뛰어난 작품은 아니어서 풍선같이 부푼 몸의 자본가, 와이어 장치를 이용한 액션 등을 활용한 풍자적인 재미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4일까지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 1644-2003.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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