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레이터) 정해인씨가 왔었으면 기자들이 많이 왔을텐데 말이죠. 하하하.” 김진만 피디의 우스갯소리가 묵직하게 들린다. 28일 상암 <문화방송> 사옥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곰> 시사회에는 기자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북적이는 드라마 제작발표회장과 비교하면 아쉬운 모양새다. 김 피디는 “지원 부족, 콘텐츠 경쟁 등으로 갈수록 다큐 제작이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부족한 관심 속에서도 “다큐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는” 사명으로 달려온 김 피디가 또 한번 만듦새 좋은 다큐를 내놨다. 12월3일부터 내년 2월18일까지 월요일 밤 11시10분에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곰>이다. 총 5회로 기후변화와 인간의 욕심으로 사라져 가는 곰을 조명한다. 김 피디는 “곰이 있는 곳은 어디든 곰이 사람이 되는 등 신화가 있다. 곰이 왜 그런 존재였는지를 생각하다가 제작하게 됐다”고 했다.
제작비 15억원으로, 2년간 12개 지역을 다녔다. 북극, 시베리아, 캄차카, 알프스, 쓰촨 등이다. 캄차카 쿠를호수에서 연어를 사냥하는 불곰, 알래스카 북극곰 가족, 세번이나 지리산을 탈출해 김천 수도산까지 갔던 반달가슴곰 빠삐용, 중국 상징 판다 등 다양한 곰 이야기가 유에이치디(UHD) 화면에 생생하게 담긴다. 최정길 촬영감독은 “국내 다큐 최초로 에이치디아르(HDR)로 제작했다. 검은 색과 흰색이 잘 구현되는 데 신경 썼다”고 말했다.
야생을 담는 다큐는 기다림과 위험의 싸움이다. 송관섭 피디는 올무에 발이 잘린 ‘올무곰’을 담으려고 3개월간 산에서 살았다. 보름 기다려 어미 얼굴 한번 봤고, 한달 기다려 새끼를 봤다. 그는 “삽 들고 가서 생리현상 해결하고 냄새 나면 멧돼지가 올까봐 흙을 잘 덮어뒀다”며 웃었다. 최 감독은 “자연 방사된 팬더는 사람을 봐서는 안되기에 팬더 의상을 입고, 대소변과 벼룩 등을 의상에 묻히고 촬영했다”고 말했다. 김진만 피디는 “불곰이 사냥이 잘 안 되자, 갑자기 촬영팀을 쳐다봐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 크고 작은 위험에 늘 노출됐었다”고 털어놨다.
험난한 잠복과 기다림 뒤 탄생한 <곰>은 웃음과 감동, 폐부를 찌르는 아픔이 공존한다. 귀여운 팬더 모습에 미소 짓다가도, 덫에 다리가 잘린 지리산 곰이 불편한 몸으로 두 새끼를 돌보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핑 돈다. 빠삐용 이야기에서는 곰이 기를 쓰고 수도산으로 가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빠삐용을 굳이 지리산으로 포획해와야했는가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간다. <아마존의 눈물>(2009)을 시작으로 <남극의 눈물> <북극의 눈물> 등을 제작해온 김 피디는 “<곰> 역시 (전작들처럼) 기후 변화와 인간의 욕심으로 곰들이 겪는 고통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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