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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상상에서 일상으로…개성공단 사람들이 사는 법

등록 2018-11-20 05:00수정 2018-11-20 09:29

연극 ‘러브 스토리’ 이경성 연출가 인터뷰

작은 통일 이뤄지던 기적의 공간
어울려 탁구치기·선물 교환하기
사람 사는 공간으로 현실감 있게

공단 관계자 인터뷰 재료 삼아
허구 속 인물에 실제 일상 엮어
우리안의 민족애 슬쩍 들추기도

“제목과 달리 남녀 사랑얘기 없이
분단 아픔이 잊혀질까 연극으로
비전향 장기수분들 만나고 싶어”
연극 <러브스토리>를 연출한 이경성 연출가.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러브스토리>를 연출한 이경성 연출가. 두산아트센터 제공.
2016년 2월12일, 남한 정부의 결정에 따라 개성공단이 예고 없이 폐쇄됐다. 2004년부터 운영된 개성공단은 남북의 체제 논리를 떠나 양쪽 노동자들의 삶의 공간이었다. 공단 폐쇄 이후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은 남북 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이들은 폐쇄 전 이 공간에서 함께 머물며 어떤 감정과 정서를 나누었을까?

오는 24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오르는 연극 <러브스토리>는 개성공단 내 남북한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다. 연출진과 배우들은 올 초부터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남북출입사무소 직원 등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해 개성공단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개성공단에서 통근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는 ‘최송아’, 유통기업에서 근무하는 소심한 성격의 ‘리예매’, 남한 사람들만 이용하는 공단 내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김뿔’은 배우들이 각자 소설을 써서 만들어낸 북한 노동자들이다. 연극은 ‘상상하기’를 통해 만들어낸 북한 노동자들에 실제 공단 내 일상을 엮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을 만든 이경성(35·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 대표) 연출가는 “만나본 기업인들에게선 투자한 것을 모두 잃은 박탈감이 느껴졌는데 한편으로 개성공단에서의 노동력 제공을 자부심으로 여겼을 북한 근로자들은 어떤 고민이 생겼을까 상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 연출가가 개성공단에 관심을 가진 건 분단의 아픔을 다룬 연극 <워킹홀리데이>(2017)를 만들면서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이 땅을 이해해보려고 비무장지대 일대를 배우들과 함께 걸었어요. 서쪽에서 동쪽으로 걷는데 갈 수 없는 왼쪽 땅에 대한 느낌이 묘하더라고요. 전쟁을 경험한 세대도, 사회운동을 한 세대도 아니기에 남북군사분계선(DMZ)이나 개성공단 등 북한에 대한 관심을 일상에서 사유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지 않으면 더 멀어질 것 같아 연극으로 올리게 됐어요.”

연극 <러브스토리>.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러브스토리>. 두산아트센터 제공.
<러브스토리>는 개성공단을 남북이 공존하는 공간을 넘어 보통사람들의 공간으로 현실감 있게 그린다.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전 공단 안에선 남북 노동자들이 어울려 탁구를 치거나 몰래 선물을 교환하기도 했다. 연극은 이를 반영하듯 초코파이를 즐겨 먹는 최송아가 친해진 남한 노동자의 제주도 가족여행 사진을 보고 제주도 여행을 소망하게 되고, 자본주의 음악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김뿔이 자유 의지에 눈뜨는 얘기들을 담았다. 그런데 <러브스토리>란 제목에 맞지 않게 남북 남녀간의 있을 법한 사랑 이야기는 없다.

“남북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공단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골치 아픈 일이라 실제 스캔들이 생기면 근무처를 바꿔 떼어놓았다고 하더라고요. 개성공단지원재단분들이 구체적인 언급은 힘들다고 말씀을 피하셨는데 이분들이 연극 제목이 <러브스토리>로 나오니까 긴장하셨다가 보시곤 안도하셨어요.(웃음) 애를 써서 한 인물을 상상해 만들어내는 과정이 사랑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 <러브 스토리>라는 제목을 지었어요.”

연극은 북한 국가·북한의 국민체조인 ‘업간 체조’ 등을 보여주며 우리가 몰랐던 북한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고, “나는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같은 항목을 담은 ‘국뽕테스트’를 통해 우리 안의 국가주의나 민족애를 슬쩍 들춰보기도 한다. “북한과 남북관계 등을 공부하면서 어떤 면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더 풍부한 정서를 가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남한 사회는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제한된 자유이기도 하잖아요. 우위에서 상대를 판단하려고 하던 태도를 조금은 내려놓은 것 같아요.”

이 연출가와 극단 바키는 서울에 대한 이야기인 <서울연습-모델, 하우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비포 애프터> <그녀를 말해요> 등을 통해 동시대 이슈를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세월호, 북한같이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건 때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 연출가는 “타인의 고통에 관해 얘기하는 어려움이 있는 거지 용기가 필요한 일은 아닌 것 같다”면서 “연극이 그런 이슈를 의무감으로 다룰 일도 아니고 다만 연극을 하는 우리가 그 이슈에 질문이 생기면 예술을 통해서 이야기를 던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러브스토리>는 배우들이 직접 “만나보고 싶은 북한 친구”에게 쓴 편지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고, 탁구를 치는 것 같은 ‘작은 통일’이 이뤄지던 기적의 공간인 개성공단이 어서 다시 열리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이 연출가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체제와 개인의 상관관계를 고민하다 보니 관심이 ‘비전향 장기수’까지 닿았다. “기사를 접해보니 이분들이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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