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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재난현장엔 꼭 있다, 유족 보듬는 유족들

등록 2018-11-13 18:25수정 2018-11-14 15:26

CBS 라디오 다큐 ‘남겨진 이들의 선물’
대구 지하철·씨랜드·해병대 캠프…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 공유
텐트치기부터 장례까지 직접하며
비극적 사고 막기 위해 주체적 활동

인생 바뀐 사람들의 4부작 로드다큐
프랑스 참사 피해자협회 ‘펜박’ 사례도
정혜윤 피디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
내 불행이 쓸모 있을 때 희망이 있다”
파리 테러 유족 모임 ‘11 13 15 진실과 우애’ 필리프 뒤페롱 회장(오른쪽)이 펜박의 의미를 얘기하고 있다. 왼쪽은 정혜윤 피디. CBS 제공
파리 테러 유족 모임 ‘11 13 15 진실과 우애’ 필리프 뒤페롱 회장(오른쪽)이 펜박의 의미를 얘기하고 있다. 왼쪽은 정혜윤 피디. CBS 제공
이 모든 것은 ‘출동’이라는 두 글자에서 시작됐다. 2016년 봄, 유경근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파리에서 프랑스 재난 참사 테러 피해자 협회 ‘펜박’(FENVAC)을 만나고 온 직후였다. “재난 가족들이 재난 현장에 출동하는 단체가 있더라고요.” 유 위원장의 말에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평소 재난 현장에 갈 때마다 텐트 치는 것부터 장례 절차까지 유가족들이 모든 것을 직접 하는 걸 보면서, 이런 걸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그런데 ‘출동’이란 두 글자에서 뭔가 울컥하더라고요. 슬픈 사람이 또 다른 슬픈 사람이 있는 장소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좇고 싶었어요.” 12일 시작한 4부작 라디오 다큐멘터리 <남겨진 이들의 선물>(표준FM 서울 98.1㎒ 월~목 저녁 7시25분)은 유족들이 또 다른 유족을 위로하고 힘을 모으고 희망을 찾는 이야기다.

먼저, 유족과 생존자들부터 만나야 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 화성 씨랜드 유족, 태안 해병대 캠프 유족, 천안함 생존자, 911 유족, 파리 테러 유족,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 생존자, 플로리다 파클랜드 생존자, 에어프랑스 추락사건 유족 등 국내외 수십여명을 10개월간 찾아다녔다. 유족에게 연락하고, 생존자를 찾는 과정 등은 힘들었다. 그들의 슬픔을 복기시켜야 하는 게, 그 슬픔이 너무 아파서 피디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그들은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유족·생존자들은 또 다른 슬픔의 현장에서 사고 이후 자신이 느낀 국가에 느낀 배신감과 치유의 노력을 공유하고 있었다.

참사가 생길 때마다 유족들은 알게 모르게 현장으로 갔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일주일 뒤 팽목항을 찾았다. 1999년 화성 씨랜드 유족도, 2013년 태안 해병대 캠프 유족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 2015년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이듬해 사망) 등 슬픔의 현장마다 세월호 유족들이 있었다. 정 피디는 “세월호 이후 유족이 다른 유족들을 보듬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 그들의 눈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세상의 슬픈 사람들이었다. 유족들은 경험을 나누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의미있는 변화임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함 생존자 최광수씨는 프로그램에서 “천안함은 어디를 가도 따라다닌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이 나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하는 데 이 경험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사고가 생길 때마다 유족들은 현장으로 갔다. 유족들의 경험은 또 다른 비극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겨레> 자료 사진
사고가 생길 때마다 유족들은 현장으로 갔다. 유족들의 경험은 또 다른 비극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겨레> 자료 사진
프로그램은 실제 그런 ‘경험 공유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 간다. ‘슬픈 사람의 연대’인 펜박은 1980년~90년대 재난을 당한 가족들로 구성됐다. 리옹역 기차 충돌사고, 바르보탕 온천 화재사고 등이다. 이들은 피해자들을 주기적으로 만나고, 사법 절차에 동행하고 그들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2009년 에어프랑스 447기 대서양 추락사건 유족이면서 펜박 희생자지원부에서 일하는 오필리에 튈리에는 “펜박의 목표는 피해자들의 삶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펜박은 2014년 이래 정부와 일을 함께하는데,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 주재 회의에도 간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 테러의 슬픔은 현재 9·11 메모리얼 박물관 등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한국에선 세월호 이후, 화성씨랜드, 대구 지하철 유족 등이 함께 재난유가족협회를 만든 적은 있지만, 활동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프로그램은 9·11 유가족을 만나 ‘당신이 생각하는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취재 여정을 따라가보면,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말하는 희망을 따라가는 로드 다큐다. 찾은 희망은 무엇일까. 정 피디는 희망의 핵심에는 ‘우리’가 있다고 말한다. 2017년 제주 산업체 현장실습 중 사고를 당한 고 이민호군 아버지는 이후 일면식도 없던 유경근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피디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나눌 곳이 없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고 한다. 대한민국, 전세계에서 혼자 아픔을 겪은 이들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정 피디는 “유족들이 고통스럽지만 또 다른 비극을 막으려고 주체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피해자의 경험을 가치있게 여겨야 한다. 내가 겪은 불행이 쓸모가 있을 때 희망이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유경근 위원장이 2016년 ‘펜박’을 찾아간 경험을 말하는 1부,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을 찾은 다른 재난 사고 유족들의 이야기인 2부에 이어, 14일 3부에서는 프랑스로 건너간 천안함 생존자 최광수씨가 한국과 다른 대처 방식을 보는 ‘파리의 천안함 병사’편을 내보낸다. 15일 마지막 4부에서는 백서를 만들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유족과 생존자의 이야기인 ‘희망, 희생자, 생존자, 변화를 만드는 자’를 방송한다. 정 피디는 원고를 수십번 고쳐 쓰고, 편집을 수정했다. 프로그램은 유족들의 목소리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4부에서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 간 세월호 유족은 그곳에 전시된 유리창을 보며 ‘아’라는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 외마디만으로도 수많은 아픔을 통달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래서 눈물은 절로 흐른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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