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승우의 팬인 김정은(39)씨는 지난 8월 말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1차 티켓 오픈 당시 2분 만에 매진된 표를 구하기 위해 티켓 거래 사이트 등을 돌아보다 기겁했다. 주말 15만원인 브이아이피(VIP) 좌석이 50만~60만원에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티켓 품앗이를 하자며 친구들과 동시에 사이트에 접속해 구매를 시도했지만 표를 구할 수 없었다”면서 “매크로(동일작업 반복 프로그램)를 사용해 표를 산 뒤 웃돈을 받고 되파는 암표상을 막을 방법이 없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현재(10월30일 기준) <지킬앤하이드>는 2차 오픈된 티켓도 VIP 암표가 27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마저도 정상가보다 12만원이 비싸다.
■ 정부 주최 무료 행사까지 150만원짜리 암표 등장 지난달 말 시작된 아이유의 ‘10주년 투어 콘서트’ 티켓도 웃돈에 거래되고 있다. 아르(R)석이 12만1000원이지만 티켓거래 사이트엔 6배 비싼 76만3000원에(10월30일 기준) 티켓이 올라와 있다. 내년 4월에 내한하는 팝가수 에드 시런의 공연 티켓은 무대 바로 앞인 R석 정상가가 13만2000원이지만 3~4배 비싼 46만원에 판매중이다.
정상적인 티켓 거래를 막고 웃돈을 노린 ‘플미충’(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는 암표상에 벌레 ‘충’을 붙인 말)이 기승을 부리면서 공연기획사와 팬들의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다. 과거엔 수십 배에 달하는 웃돈을 주는 티켓은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 콘서트, 스타 배우가 출연하는 뮤지컬 등에 국한됐지만 최근에는 영화 무대 인사나 팬미팅, 입장료가 무료인 시상식 등까지 퍼지고 있다. 스포츠, 콘서트, 뮤지컬 할 것 없이 티켓팅이 끝나면 온라인 티켓 장터인 ‘티켓베이’ ‘스텁허브’, 중고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 트위터 등을 통해 웃돈을 붙인 티켓 판매 글이 쏟아진다. 지난달 18일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부 행사라 무료인 ‘2018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 티켓이 방탄소년단(BTS)이 훈장을 받기 위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150만원에 거래되는 실정”이라면서 온라인 암표상에 대한 근절 대책을 문체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 처벌 규정도 없어 온라인 암표거래 활개 오랫동안 지적돼 온 온라인 암표상들이 근절되지 않는 건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암표를 판매하다 적발되면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범칙금을 부과받지만 온라인 판매의 경우 처벌 규정이 없다. 현재 국회에는 온라인 암표거래에 대한 단속·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경범죄 처벌법 개정안’, 공연법에 암표거래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공연법 개정안’, 매크로를 금지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이 10건 가까이 발의됐지만 모두 계류 상태다.
대책을 마련해야 할 문체부도 뾰족한 수가 없긴 마찬가지다. 지난 5월 한국법제연구원에 암표거래 근절을 위한 연구 용역을 맡기고 해외 사례나 입법제안된 법률안 검토에 나섰으나 실태 파악을 위한 모니터링도 하지 못하고 있다.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 담당자는 “티켓이 스포츠, 콘서트, 뮤지컬 등 광범위하게 걸쳐져 있고 매크로를 단속하기 위해선 정보통신망법도 손질해야하기 때문에 개별법 하나만 고친다고 불법거래가 사라지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위해 기획사나 예매처 같은 업계는 물론 국회와 계속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상적인 티켓 거래를 막고 웃돈을 노린 이른바 ‘플미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이유 콘서트 티켓은 6배, 에스 시런 콘서트, 조승우 출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티켓은 4배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 기획사가 직접 나서 ‘암표와의 전쟁’ 선포 법안 마련이 더딘 사이 암표상들의 수법은 날로 지능화하고 있다. 온라인 예매처들이 보안문자를 넣어야 예매가 가능한 안심예매를 도입하고 예매자와 관람객의 이름을 비교하는 현장 확인을 강화했지만 암표상들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지난 30일 애드 시런 공연 티켓 암표상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접근했더니 “콘서트 가는 이의 인터파크 계정을 알려주면 티켓을 옮겨주는 방식으로 예매를 도와줄 수 있다”면서 “정상 티켓값(13만5500원)은 무통장입금으로 예매사이트에 보내고 제겐 수고비 5만5000원을 계좌로 보내주면 문제없이 공연을 볼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트래픽 확인을 통해 대량 구매자를 색출하고 있지만 규제할 법안이 없어 법적 조처를 취할 수 없다”면서 “현장 확인도 공연 시작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어 기획사들이 내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매처마저 대안을 내놓지 못하다 보니 공연 기획사나 가수 소속사들이 직접 암표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 카카오엠은 공식 페이스북에 암표 대응 방침을 공개했다. “부정 티켓 거래가 확인되는 경우 해당 티켓을 소속사가 직접 구매해 예매자 정보를 확인하고 예매 취소 및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면서 “예매자가 팬클럽 회원이라면 즉시 팬클럽에서 배제하고 아이유의 모든 유료 공연, 유료 팬클럽 운영에서 영구 제명 처리할 예정”이라고 강경하게 나섰다. 불법거래 티켓을 신고해 확인될 경우 제보자에게 티켓을 양도하는 방안까지 내놓자 팬들의 제보도 쏟아지고 있다. 그 결과 예매 한 달 만에 100여건의 불법거래를 발각했다. 아이유 소속사 관계자는 “한 유명 티켓 거래 사이트에서 보면 올림픽체조경기장 공연 티켓이 하루 평균 150~400건 정도 거래되는 것과 달리 같은 장소에서 하는 아이유 공연은 20건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10주년 공연을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 팬들에게도 암표를 구매하지 않아야 근절할 수 있다고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도 예매사이트에 “공식 예매처가 아닌 다른 경로 및 불법적인 방법으로 예매한 티켓은 입장이 불가하다”는 공지를 띄우고 단속에 나섰다. 기획사인 오디컴퍼니는 “불법거래 티켓으로 손해를 본 피해자들이 제작사에 항의하기도 하는데 구제해드리기가 어렵다”면서 “기획사나 예매처들이 단속하는 건 한계가 있는 만큼 법률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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