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의 예술의전달
9집 앨범 ‘뉴 실크로드’ 내고 2년 만에 내한
대형 올림픽홀 공연 전석매진 신화 깨져
기획사의 미숙한 진행과 밴드에 대한 실망감
섬세하면서 힘있는 연주로 막심이 달래줘
9집 앨범 ‘뉴 실크로드’ 내고 2년 만에 내한
대형 올림픽홀 공연 전석매진 신화 깨져
기획사의 미숙한 진행과 밴드에 대한 실망감
섬세하면서 힘있는 연주로 막심이 달래줘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 므라비차와 나눈 전자우편 인터뷰>
“나는 평화주의자…개선된 남북 분위기 기쁘게 생각해”
전쟁이 있던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막심은 피아노를 친구 삼아 두려움을 떨쳤다. 자그레브 국제음악 콩쿠르(1993), 퐁트와즈 콩쿠르(2001) 등에서 우승하며 주목받던 그는 크로스오버 뮤지션인 바네사 메이를 키운 거물 매니저 멜 부쉬에게 발탁돼 크로스오보 연주자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의 첫 크로스오버 앨범 <더 피아노 플레이어>(2003)는 그를 대중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아래는 막심과 나눈 전자우편 인터뷰 내용이다.
Q. 정통 클래식 연주자에서 크로스오버 장르로 확장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
A. 나는 항상 클래식 음악을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구현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라이트 쇼(Light Show)와 온갖 레이저를 가미한 클래식 공연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15년 전에 매니저인 멜 부쉬를 만나 음악 자체에 변화를 줘 보기로 결심했다. 개인적인 시간에 일렉트로닉 음악을 즐겨 듣기 때문에 클래식과 일렉트로닉을 뒤섞는 일에 언제나 관심이 많았다.
Q. 주로 어떤 음악을 듣나?
A. 대개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아마 내가 듣는 음악의 70~80% 정도는 클래식일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놀러 나갈 때에는 언제나 일렉트로닉 음악을 듣는다.
Q. 좋아하는 작곡가와 그 이유는?
A. 스트라빈스키나 프로코피예프 같은 러시아 출신 작곡가들을 좋아한다. 이와 같은 기호는 아마 나에게 흐르는 슬라브의 피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Q. ‘신이 내린 손가락’이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훌륭한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또 내 일을 사랑한다. 확실히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봐 준 것 같다.
Q. 굴곡 없는 음악인생을 걸어온 듯하다. 가장 환희에 찼던 시기와 힘든 시기를 꼽아본다면?
A. 음악 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연습을 위해 음악학교 지하실에서 지내던 중 겪은 전쟁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쟁 후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을 때에는 크로아티아의 경제 상황이 매우 나빴다. 사람들은 클래식 공연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최고의 순간을 꼽아보자면, 15년 전 지금의 매니저 멜 부쉬를 만난 것, 음반사 EMI와 계약했을 때가 아닐까 한다.
Q. 자신의 외모에 대한 생각은?
A. 나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 무엇을 입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만, 외모에 대한 칭찬보다 내 음악에 관련된 칭찬을 받을 때 훨씬 더 행복하다. 나는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Q. 몸에 문신이 많다. 문신마다 어떤 의미가 있나?
A. 딸이 태어났을 때 딸 이름을 새긴 타투와 인도 만다라 문양들은 내게 의미가 있다. 그외 대부분의 문신들은 장식용이다.
Q.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과거 한국의 전쟁기념관을 방문하는 등 한국의 분단상황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최근 남북 평화분위기도 알고 있나?
A. 물론이다. 나는 한국의 현 상황에 관심이 있고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체크한다. 평화적인 측면에서 상황이 개선되고 있음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전쟁을 겪은 국가 출신으로서, 그리고 직접 전쟁을 겪은 사람으로서 나는 의사소통과 평화적인 해결 방안들이 다른 어떤 방법보다 낫다고 느낀다. 열렬한 평화주의자(반전주의자)로서 나는 평화만을 믿는다.
Q. 음악가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A. 내 도전은 항상 나를 뛰어넘는 것이다. 계속 연주하고 연습하며 내 음악에 대한 사랑과 공연의 흥분을 팬들에게까지 확장할 수 있게끔 단련하는 것. 그것이 내 목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