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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막심 므라비차, ‘매진의 왕자’라도 3천석은 못 채웠더라

등록 2018-10-14 11:15수정 2018-10-15 16:54

김미영의 예술의전달

9집 앨범 ‘뉴 실크로드’ 내고 2년 만에 내한
대형 올림픽홀 공연 전석매진 신화 깨져
기획사의 미숙한 진행과 밴드에 대한 실망감
섬세하면서 힘있는 연주로 막심이 달래줘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공연 기획사에서 보낸 보도자료용 사진을 넋놓고 보긴 처음이다. 직업 모델 뺨친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목과 팔에 한 문신, 피아니스트의 프로필 사진이라곤 믿기지 않는 상반신 탈의 사진과 민소매 티 사진까지. 외모만 빛날까. 연주 실력도 훌륭하다. ‘신이 내린 손가락’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그의 속주는 빠르면서 정교하다. 팔의 근육이 돋보이는 강력한 타건에선 섹시미가 뿜어져 나온다.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 막심 므라비차(43). 그는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2004년 첫 내한공연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전석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운 그를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에서 영접했다. 2년 만의 내한으로 9집 앨범 <뉴 실크로드> 발매를 기념한 공연이다. 공연장 앞은 인산인해였다. 표를 찾으려는 이들의 줄이 끝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공연도 전석매진인가 감탄하며 공연장에 들어섰는데 아뿔싸, 아니었다. 공연기획사의 준비부족으로 티켓 확인이 늦어지면서 줄이 길었을 뿐이다. 공연장에 들어가니 1층은 꽉 찼지만 2층 좌석은 꽤 빈자리가 보였다. 전석매진의 신화는 안타깝게도 이번에 깨진 듯 했다.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공연 제목은 <막심 위드 히즈 밴드 인 코리아>다.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자 4명, 드럼과 타악기 연주자 2명으로 이뤄진 밴드가 이번 공연에 함께 했다. 허밍하듯 노래하는 여가수도 나왔는데 이 밴드와 가수에 대해선 기사 말미에 언급하겠다.

환호 속에 등장한 막심은 꾸벅 인사 뒤 바로 피아노에 앉았다. <어 뉴 월드>(2005) 앨범에 든 ‘노스트라다무스’와 그에게 ‘신이 내린 손가락’이란 별명을 만들어준 ‘범블비(왕벌의 비행)’를 연주했다. 막심이 마이크를 들고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서울”하며 인사하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그의 외모와 무척 잘 어울렸다. 그는 새로 나온 앨범 <뉴 실크로드>를 소개하곤 신곡들을 연이어 연주했다. 이번 앨범은 막심이 팝을 차용한 첫 앨범이다. 최근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막심은 “실크로드 이야기에 감명받아 동양적 느낌을 담았다”면서 “존 레전드의 ‘올 오브 미’와 콜드플레이의 ‘클락’같은 작품들을 이전의 연주 스타일과는 꽤 다르게 매우 클래식한 느낌으로 연주했다”고 말했다.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은 새 앨범 수록곡 ‘뉴 실크로드’ ‘리멤버 미’ ‘그노시엔느’를 연달아 들려줬다. 그의 표현대로 이번 곡들은 이전 앨범들보다 크로스오버적인 전자음악 느낌이 덜하고 클래식했다. 섬세하고 서정적인 곡들은 현란한 테크닉과 함께 힘 있게 연주되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서 연주된 곡은 모두 16곡으로, 6집 앨범 수록곡인 ‘홀 오브 더 마운틴’으로 끝났다. ‘차일드 인 파라다이스’ 같은 빠른 곡에서 건반 위를 질주하는 막심의 손가락은 카메라가 비춘 화면 속에서도 눈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빨랐는데 정말 신이 내린 손가락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한곡이 끝날 때마다 땀을 닦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막심이 휴식시간을 갖는 동안 그의 밴드가 연주한 2곡을 제외하면 막심은 앙코르곡까지 모두 15곡을 연주했다.

앙코르곡은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메인타이틀이었다. 그는 이 한 곡을 끝내고 무대 뒤로 홀연히 사라졌다. 막심은 공연 중간에 두번 마이크를 잡았지만 연주할 곡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는 것 외엔 별다른 멘트가 없었다. 최근 내한한 외국의 유명 연주자들이 한국과의 인연이나 방문 감상을 말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친근한 한국 가곡을 연주하는 것 같은 ‘팬 서비스’는 없었다. 선우예권, 조성진처럼 관객을 몰고 다니는 피아니스트들이 서너곡에 이르는 앙코르 연주로 관객들을 녹이는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막심 므라비차. 소니뮤직 제공
그리고 그의 밴드.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허밍하듯 예쁜 인형처럼 서서 노래하던 가수는 가창력이 아쉬웠다. 그가 막심과 함께 한 ‘뉴 실크로드’는 노래 없이 들은 앨범 수록곡이 훨씬 좋았다. 막심이 쉬는 동안 밴드는 ‘갤럭시’ ‘리로드’ 두곡을 연주했다. 세 명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무대 중앙에 나와 퍼포먼스를 하며 연주할 땐 녹음된 반주곡(MR)에 맞춰 연주 시늉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줬다. 공연 예매 사이트의 후기를 읽어보니 반응이 비슷했다. “현을 튕기는 음에서 누르고 있더라” “의성마늘축제 아가씨들 같다” 등등. 그리고 또 하나 공연기획사. 미숙한 진행에 관객들의 입장이 늦어져 공연이 30분 늦게 시작했다. 무대 중앙에 설치된 13만원대 VIP 좌석은 편의점에 놓인 회색 플라스틱 의자였다. ‘내쇼날푸라스틱’이라고 쓰인 VIP 의자를 보니, 좌석 등급이 낮더라도 푹신한 내 의자가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이번 공연의 총평을 해보면 이렇다. “막심만 좋았더라~.”

<막심 므라비차와 나눈 전자우편 인터뷰>

“나는 평화주의자…개선된 남북 분위기 기쁘게 생각해”

전쟁이 있던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막심은 피아노를 친구 삼아 두려움을 떨쳤다. 자그레브 국제음악 콩쿠르(1993), 퐁트와즈 콩쿠르(2001) 등에서 우승하며 주목받던 그는 크로스오버 뮤지션인 바네사 메이를 키운 거물 매니저 멜 부쉬에게 발탁돼 크로스오보 연주자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의 첫 크로스오버 앨범 <더 피아노 플레이어>(2003)는 그를 대중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아래는 막심과 나눈 전자우편 인터뷰 내용이다.

Q. 정통 클래식 연주자에서 크로스오버 장르로 확장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

A. 나는 항상 클래식 음악을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구현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라이트 쇼(Light Show)와 온갖 레이저를 가미한 클래식 공연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15년 전에 매니저인 멜 부쉬를 만나 음악 자체에 변화를 줘 보기로 결심했다. 개인적인 시간에 일렉트로닉 음악을 즐겨 듣기 때문에 클래식과 일렉트로닉을 뒤섞는 일에 언제나 관심이 많았다.

Q. 주로 어떤 음악을 듣나?

A. 대개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아마 내가 듣는 음악의 70~80% 정도는 클래식일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놀러 나갈 때에는 언제나 일렉트로닉 음악을 듣는다.

Q. 좋아하는 작곡가와 그 이유는?

A. 스트라빈스키나 프로코피예프 같은 러시아 출신 작곡가들을 좋아한다. 이와 같은 기호는 아마 나에게 흐르는 슬라브의 피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Q. ‘신이 내린 손가락’이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훌륭한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또 내 일을 사랑한다. 확실히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봐 준 것 같다.

Q. 굴곡 없는 음악인생을 걸어온 듯하다. 가장 환희에 찼던 시기와 힘든 시기를 꼽아본다면?

A. 음악 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연습을 위해 음악학교 지하실에서 지내던 중 겪은 전쟁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쟁 후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을 때에는 크로아티아의 경제 상황이 매우 나빴다. 사람들은 클래식 공연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최고의 순간을 꼽아보자면, 15년 전 지금의 매니저 멜 부쉬를 만난 것, 음반사 EMI와 계약했을 때가 아닐까 한다.

Q. 자신의 외모에 대한 생각은?

A. 나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 무엇을 입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만, 외모에 대한 칭찬보다 내 음악에 관련된 칭찬을 받을 때 훨씬 더 행복하다. 나는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Q. 몸에 문신이 많다. 문신마다 어떤 의미가 있나?

A. 딸이 태어났을 때 딸 이름을 새긴 타투와 인도 만다라 문양들은 내게 의미가 있다. 그외 대부분의 문신들은 장식용이다.

Q.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과거 한국의 전쟁기념관을 방문하는 등 한국의 분단상황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최근 남북 평화분위기도 알고 있나?

A. 물론이다. 나는 한국의 현 상황에 관심이 있고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체크한다. 평화적인 측면에서 상황이 개선되고 있음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전쟁을 겪은 국가 출신으로서, 그리고 직접 전쟁을 겪은 사람으로서 나는 의사소통과 평화적인 해결 방안들이 다른 어떤 방법보다 낫다고 느낀다. 열렬한 평화주의자(반전주의자)로서 나는 평화만을 믿는다.

Q. 음악가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A. 내 도전은 항상 나를 뛰어넘는 것이다. 계속 연주하고 연습하며 내 음악에 대한 사랑과 공연의 흥분을 팬들에게까지 확장할 수 있게끔 단련하는 것. 그것이 내 목표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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