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노조사무실에서 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민간위원들이 ‘문체부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 발표’에 대한 입장표명을 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발표한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이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문화예술계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문체부 산하기관 10곳의 책임규명 이행조처도 흐지부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6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산하기관 10곳의 56명에 대해 징계를 권고했지만, 징계조처를 끝낸 곳은 6곳이었다. 이 기관들에선 모두 13명이 징계 권고 목록에 올랐지만, 실제 징계를 받은 이는 4명에 불과했다. 이조차 2명은 ‘주의’, 나머지 2명도 ‘경고’여서 경징계(견책, 감봉)에도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8일 각 기관에 확인한 결과, 문체부로부터 받은 진상조사위의 자료를 토대로 자체조사를 거쳐 징계를 끝낸 공공기관은 모두 6곳이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4명)는 2명이 퇴사해 남은 2명만 ‘주의’를 주었고, 국립극단(3명)도 2명이 퇴사해 남은 1명만 ‘경고’ 조처를 내렸다. 한국문학번역원(1명)도 해당 직원이 이미 퇴사해 징계처분이 되지 못했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1명)은 ‘견책’ 조처가 나왔으나 징계를 받으면 감경해주는 표창을 받은 이력 때문에 ‘불문경고’ 처분됐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2명)는 1명이 징계시효 경과로 처분 불가, 나머지 1명은 ‘징계처분 없음’ 결론이 나왔다. 한국영상자료원(2명)도 2명이 모두 퇴사해 징계조처를 하지 못했다.
블랙리스트 징계조처가 끝나지 않은 기관은 4곳(43명)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23명, 한국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14명,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4명,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2명이다. 이들 기관은 “자체 인사위를 꾸려 조사하고 있으나 징계조처를 내놓는 데는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진상조사위에 참가했던 한 위원은 “관련자들의 대부분 징계시효(발생일로부터 3년) 이달 안에 끝난다”면서 “블랙리스트에 깊이 관여한 예술위나 영진위가 문체부 눈치를 보며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미 진상조사위가 확인한 사건들의 징계시효가 이달로 종료되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체부 공무원들이 예술위 직원들에게 도종환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상대로 블랙리스트 내용을 위증하도록 교사했던 사건에 대한 시효가 7일로 끝났다. 또 2015년 10월18일에 예술위 산하 공연예술센터가 자체기획했던 연극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고 일시중단시킨 사건도 오는 18일이면 시효가 만료된다. 진상조사위에 참가했던 다른 위원은 “산하기관 직원들은 현장에서 문화예술가들을 직접 대면한 사람들로 이들이 진실로 예술가들에게 사과하고 진정한 화해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와 더불어 산하기관들도 자신들에게 블랙리스트 업무를 지시한 문체부에 항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하기관들의 이행조처에 앞서 지난 9월13일 먼저 이행조처를 내놓은 문체부는 7명을 수사 의뢰하고, 10명에게 주의조처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문체부의 이행 결정에 분노한 문화예술계는 문체부 규탄 성명을 잇달아 내놓는 한편 청와대 등지에서 1인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연극인들은 블랙리스트 피해 단체 및 개인들의 연명 서명을 받아 다음 주께 기자회견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양구 전 진상조사위원(연극 연출가)은 “문체부는 책임을 이행하는 게 아니고 전가하고 있고, 피해가 회복하는 게 아니라 가중되는 이행계획을 하고 있다”면서 “징계시효가 만료된 문체부 공무원들을 상대로 공동고발인단을 모집해 형사고발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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