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곡>이 한글날을 앞두고 6일 방송에서 우리말 자막을 사용했다. 평소처럼 MC가 아닌 ‘이끄는 이’라는 소개가 눈길을 끈다. 프로그램 갈무리.
앗, 방금 뭐라고 했지? 6일 <불후의 명곡>(한국방송2)을 보던 눈밝은 시청자들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을지 모르겠다. 프로그램 첫머리에 진행자 신동엽을 소개하는 자막에서, 평소와 다른 수식어가 붙었다. ‘MC’가 아니라 ‘이끄는 이’.
내가 뭘 본 거지? 하는 순간은 연이어 등장한다. 가수 ‘KCM’을 알파벳이 아닌 한글로 ‘케이씨엠’이라고 표기했다. 아이돌 그룹 펜타곤을 설명하면서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의미로 ‘자체체작돌’이라고 썼다. 유태평양의 무대를 보면서 “콤비네이션 피자가 떠올랐다”는 파란 라이언의 말에는 ‘모둠 피자’라는 자막을 달았다. 십여개의 다양한 우리말 글꼴을 활용해 노랫말과 자막을 표기한 것도 이채롭다.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태헌 피디는 “한글날을 맞아 ‘아름다운 노랫말 특집’을 기획했다. 그 취지에 맞게 예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막에서만이라도 신조어나 영어가 아니라 가능하면 우리말을 사용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평소보다 두세배의 제작 시간을 할애했다. 출연자 이야기에 맞는 우리말을 찾은 뒤, 이를 국립국어원과 <한국방송> 아나운서실 등에 하나하나 문의했다. 순우리말 사이트를 뒤지기도 했다. 맞는 낱말이 없으면 예능감을 더해 제작진이 만들었다. 이태헌 피디는 “시청자에게 알려주려고 시도했는데, 제작진도 공부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불후의 명곡>은 평소에도 한자어인 ‘가사’ 대신 ‘노랫말’이라고 말하거나 ‘멜로디’를 ‘운율’ ‘운조’라고 일컫는 등 어색하지 않는 선에서는 최대한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자막에 다양한 글꼴을 사용해 아름다운 한글을 알리기도 했다. 프로그램 갈무리
시청자들이 그 변화를 알아줄까 싶었다는데, “색다르다” “재미있다”는 반응들도 꽤 있다. 단발성이기는 하지만, 이런 시도가 눈에 띄는 것은 예능프로그램의 힘 때문이다. 지난 6일 <불후의 명곡> 방송 시청률은 10%. 이런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재미를 위한 외국어 남발을 줄이고, 순수 한글을 사용하는 시도를 꾸준히 하면 교양프로그램들보다 시청자에게 훨씬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 한 예능 피디는 “급식체 사용 등을 감각적이라고 잘못 인식하는 제작진이 있는데, 한글을 활용해 색다른 재미를 주면, 그런 잘못된 인식을 깨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을 통한 우리말 훼손이 심각한 상황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최근 리얼버라이어티나 관찰예능프로그램에서 일상 언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틀린 말이나 비속어를 거르지 않고 자막에 내보내는 일이 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최근 조사했더니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에서 ‘웬열’(<런닝맨>), ‘뮈안해’(<아는 형님>), ‘뷰리full’(<전지적 참견시점>)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됐다. 방심위는 3일 “방송언어 관련 심의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감시,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태헌 피디는 “신조어와 외래어의 무분별한 사용을 줄이는 등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시도를 꾸준히 할 것이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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