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은 사람, 알아도 궁금한 사람, 알수록 대단한 사람, 알기에 보고 싶은 사람. 한겨레 문화부 대중문화팀이 올 추석에 더 깊이 알려주고 싶은 셀럽을 골랐습니다. 조승우, 조용필, 양준일, 김제동, 정경화, 최정화 등입니다. 취재하며 느꼈던 감동과 사심을 동시에 전합니다.
<정경화 & 조성진 듀오콘서트>. 예술의전당 제공
‘클알못’(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한국 클래식계에 한 획을 그은 ‘정트리오’(정명훈·정명화·정경화)는 알 것 같다. 어쩌다 지난해 공연 담당기자가 되어 클래식 공연장에서 이들을 직접 만났을 때는 교과서에서 보던 위인들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봤을 땐 입이 딱 벌어졌다. 트이지 않은 귀에도 호강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0)의 무대는 표정과 육체만으로도 전율이 전해진다. 떨리는 눈매와 굳게 다문 입, 활을 켜기 위한 미세한 움직임 하나마저도 테크닉에서 완벽함을 기하는 그의 서릿발 같은 연주가 읽혔다. 그가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 그의 기사에서 빠지지 않는 표현인 ‘활이 공기를 가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지난 3월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서 서독일 최고 관현악단이란 평가를 받는 보훔심포니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를 협연할 때의 정경화는 그야말로 빛이 났다. 관록과 열정이 묻어나는 연주에 1300여 청중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현의 마녀’ ‘동양의 마녀’ ‘아시아의 암사자’로 불리며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보이던 정경화에게 새로운 별명이 필요할 듯하다. 그의 연주는 이제 활을 쏘기 위해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 같지 않고 먹물에 담긴 붓처럼 부드러워졌다. 한음이라도 빗나가면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완벽주의자는 딱 한 음을 틀렸을 뿐인데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던 젊은 날을 떠나보내고 무대에서 실수하면 웃어 보이는 여유를 찾았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정경화 & 조성진 듀오 콘서트> 전국 투어의 마지막인 7번째 무대는 그렇게 달라진 정경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앙코르 연주에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시작할 때 음을 놓치자 정경화는 “다시 할게요”를 외쳤다. 머쓱한 표정을 짓는 거장의 실수에 객석에서 “사랑해요!”란 큰 외침이 들려왔고 그 말에 정경화는 바이올린을 든 채로 큰 하트를 만들며 환하게 웃었다.
<정경화 & 조성진 듀오콘서트>. 예술의전당 제공
정경화는 이날 준비된 연주곡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46살 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가볍게 말을 걸었다. 무대에서 퇴장할 때에도 다정하게 그의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었다. 조성진의 악보를 넘겨주던 페이지터너도 챙겼다. 그와 악수를 하고 청중들에게 박수를 부탁했다. 정겨운 정경화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던 ‘현의 마녀’가 선사하는 음악만큼이나 나이 든 거장이 여유를 가지고 즐기는 편안한 음악도 감동이었다.
정경화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나이 들며 달라진 자신의 연주에 대해 언급했다. “테크닉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은 힘들죠. 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점은 받아들여야 해요. 그래도 하나 믿는 것은 작곡가가 쓴 그 음악의 핵심적 미적 포인트를 전달할 자신이 있다는 겁니다. 내 마음을 다해 음악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내 살아있는 보람이고, 그런 보람을 느끼지 않으면 난 살 수가 없어요.”
이날 정경화는 본 공연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의 격정적인 연주를 끝내고 조성진의 피아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국투어의 마지막 날인 만큼 기운이 다 빠진 듯 보였다. 정경화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연 기자회견에서 “올해 예정된 공연을 마무리하고 당분간 안식 시간을 가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다”고 했다. 솔직하고 쾌활한 그가 다시 무대로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추석 연휴 보고 싶은 사람으로 그를 소환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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