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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어른이’ 춤추게 하는 아이들의 주문 - 뮤지컬 ‘마틸다’

등록 2018-09-16 18:00수정 2018-09-16 20:30

뮤지컬 ‘마틸다’ 국내 초연
아시아·비영어권 최초 공연
재치있는 영어 운율 번역으로
무대 장치·노래에 자연스럽게
영화 ‘해리포터’ 풀 키이브 참여
초능력·마술 특수효과 극대화

공연 가장 큰 매력은 ‘아이들’
600명 참가한 오디션 8개월
연습·무대 리허설 준비만 15주
러시아어·아크로바틱 수업까지
아역배우들 기량 최대한 발휘
뮤지컬 <마틸다>.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틸다>. 신시컴퍼니 제공

관객 머리 위로 아이들이 타고 있는 그네가 날아들자 가슴 속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아이들은 앉고, 서고, 엎드려서 그네를 타며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노래했다. “매일 콜라를 먹을래” “밤 새워 만화책을 볼거야” 지저귀는 아이들. 이윽고 한 뼘 자란 듯 큰 아이들이 자연스레 그네를 이어받았다. 아이들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신나는 노래 ‘어른이 되면(When I Grow Up)’을 부르자 객석이 들썩였다. 동심에 물든 ‘어른이’들의 물개 박수가 절로 터졌다.

뮤지컬 <마틸다>는 영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으로 친숙한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원작(1988)을 영국의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이 뮤지컬로 되살린 작품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똑똑한 소녀 마틸다가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와 학교 교장의 부당함에 맞서 자신과 주변 인물을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국에선 2010년 첫선을 보였고, 국내엔 아시아 최초이자 비영어권 최초로 막이 올라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뮤지컬 <마틸다>.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틸다>. 신시컴퍼니 제공
<마틸다>엔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마틸다는 <죄와 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읽는 영특한 아이다. 친구들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않는 착한 심성도 가졌는데 엄마, 아빠는 보통의 부모와 다르다. 사교댄스에 빠진 엄마는 마틸다에게 “역겹다”고 하고, 중고차를 파는 사기꾼인 아빠는 “책 그만 보고 티브이나 봐”하며 괴상한 아이 취급을 한다. 학교 교장 선생님인 미세스 트런치불도 마틸다가 경계하는 대상이다. 전직 해머던지기 선수로 2m 장신에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교장은 아이들을 “버러지”라고 부르며 발가락의 티눈처럼 여긴다. 아이들을 교장실 안 벽장에 가두는 고문을 즐기기도 한다. 집과 학교 어디서도 사랑받지 못하지만 마틸다는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다. 어른들의 부당함에 맞서 “이건 옳지 않아!”를 외치고 “세상엔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며 너희는 영원히 패자”라고 윽박지르는 교장에 맞선다. 현실을 반영한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마틸다가 전하는 메시지는 어른들에게도 울림이 크다. ‘역경은 용기로 맞서야 한다’는 것. 노래 ‘똘기’(Naughty)에서 “불공평하고 부당할 때 한숨 쉬며 견디는 건 답이 아냐”라고 말하는 마틸다의 용기에 보는 내내 응원의 마음이 생긴다.

<마틸다>는 언어적 특성을 무대 장치와 노래에 인상깊게 활용했다. 알파벳과 책으로 뒤덮인 액자형 무대를 구축하고, 노랫말도 어색하지 않게 바꿨다. 비영어권에서 처음 하는 공연인 만큼 영어의 운율을 재치 있게 한국어로 옮겨 살리는 게 관건이었는데 김수빈 번역가가 이를 잘 표현해냈다. 예를 들어 알파벳을 넣은 대표곡인 ‘스쿨송’은 “유리처럼 맑은 너의 눈빛은 텅 비(V)게 될 거야/ 발악할수록 그 고통은 따따블(W)/ 유(U)치한 짓을 하다 찍혔다간/ 너는 엑스(X)표 쾅쾅~”식으로 부르는데 알파벳 발음이 쏙쏙 들려 재미를 준다.

초현실적 상상도 넘친다. 마틸다가 만들어낸 이야기와 초능력, 트런치불 교장의 레이저 감옥 등에서 상상력을 극대화한 특수효과가 동원되는데 영화 <해리포터>와 뮤지컬 <고스트>의 마술 효과를 만들어 낸 폴 키이브가 맡았다.

뮤지컬 <마틸다>.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마틸다>. 신시컴퍼니 제공
무엇보다 <마틸다>의 가장 큰 매력은 아이들이다. 억압하는 어른들에 맞서는 아이들의 연기가 똑부러진다. 한 번 공연하는 데 2년이 소요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선보여던 신시컴퍼니는 이번에도 아역 배우들의 기량을 최대한 뽑아낸다. 600여명이 참가한 오디션에서 최종 선발된 아역 배우들은 8개월에 걸친 오디션을 시작으로 10주간의 연습과 5주간의 무대 리허설을 거쳤다. 노래·춤·연기 연습은 물론 러시아어·아크로바틱 수업도 받았다. 지난 13일 프레스콜에서 닉 애쉬튼 해외협력 연출가는 “아이들이 그 과정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는데 그 말을 입증하듯 아이들의 연기는 ‘과즙미’가 팡팡 터진다.

<마틸다>는 스타에 기대지 않고 뮤지컬 본연의 매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평가가 후하다. 특정한 스타의 팬들이 아닌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뮤지컬로 손색없다는 반응이다. 올해 영국 런던에서 <마틸다>를 보고 왔다는 한 관객은 “공연 자체는 똑같이 재밌는데 다만 한국 공연이 초연이라 그런지 앙상블은 오리지널팀이 나았다”고 평가했다. 내년 2월10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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