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재공연되는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기념해 11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 앞에서 축하행사가 열렸다. 이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 김윤석, 장현성, 설경구(사진 오른쪽부터)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학전 제공
“조금 걱정했는데 첫 주말 관객이 많이 들었다고 해서 기뻤어요. 세상이 바뀌었는데 정서는 남아 있구나 생각이 들었죠.” (배우 설경구)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지하철 1호선>이 10년 만에 다시 달린다. 지난 8일 4001회를 시작으로 다시 시동을 걸고 올 연말까지 100회 한정 공연을 펼친다. 1994년부터 15년간 공연되다 재정비를 위해 멈췄던 <지하철 1호선>은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장현성, 김윤석 등 걸출한 배우들을 키워낸 ‘배우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재공연을 기념해 지난 11일 저녁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앞에선 떠들썩한 잔치가 열렸다. 독일 원작자인 작가 폴커 루드비히와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의 흉상 제막식에 루드비히와 극단 학전 대표인 연출가 김민기, 설경구·김윤석·장현성 등의 배우들이 함께했다. 루드비히는 “나는 아무것도 안 했고 내 친구 김민기가 다 했다”면서 “내 동상이 아니라 김민기의 동상이 10개쯤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하철 1호선>을 거쳐 간 스태프와 배우 등 공연관계자들이 함께 관람한 이 날 객석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85대1의 경쟁률을 뚫고 2018년 <지하철 1호선>에 오른 배우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이번 시즌 혼혈 고아 철수역을 맡게 된 정재혁은 “이런 큰 무대에서 배역을 맡아 연기하게 돼 영광이고 감사하다”면서 “학전 독수리 5형제(설경구·김윤석·장현성·조승우·황정민)와 공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10년만에 재공연되는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학전 제공
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지하철 1호선>의 배경은 지하철 요금이 500원이던 1998년 구제금융(IMF) 시절 그대로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 지났지만 빈부격차, 실직 등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판단에 배경을 수정하지 않았다. 내용은 옌볜 출신 선녀가 남자친구를 찾으러 한국에 와 다양한 군상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중장년들에게는 ‘경제를 살립시다’ ‘간첩신고 1억’ 등 지하철 안 포스터, 지하철 잡상인과 십자가를 든 사이비 종교의 포교활동 등 그 시절 지하철 안 풍경들로 옛 생각이 나겠지만 20~30대들은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1기 배우였다 이번에 객원 조연출로 참여한 김은영씨는 “지금 세대들을 위해 명예퇴직 등 곳곳에 사회적 배경이 묻어나는 대사를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현재 뮤지컬 분위기에 맞추려다 보면 작품 정체성도 흔들리게 될 것 같았어요. 그 시대만이 표현할 향수를 가져오고 싶었고 보편성이 있으니 지금 세대도 공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죠. 10대인 제 딸도 재밌다네요.”
공연을 재개하면서 준 가장 큰 변화는 음악이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정재일 음악감독이 편곡 작업을 맡아 기존 5인조 밴드 ‘무임승차’의 악기 편성을 달리했다. 건반, 기타, 베이스기타, 드럼, 색소폰이던 구성에서 색소폰을 바이올린으로 바꾸고 아코디언과 퍼커션 등을 추가했다. 2시간50분 공연(휴식시간 포함)에 노래는 16곡 정도가 들어갔다.
11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에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재공연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와 객석이 어울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학전 제공
공연을 보며 떨렸다는 배우 장현성은 “지금 연극이나 뮤지컬을 하는 사람들이 봤을 땐 구식으로 보일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고전이 나온다면 이런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철수역을 했고, 주로 스태프로 기여했다는 김윤석은 후배들이 기특하다고 했다. “잘해줘 대견해요. 더 지나면 능수능란해질 겁니다. 이 어두운 소극장에서 배우들이 라이브 밴드와 매일 할 때 처음에 미친 짓이라고들 했는데 (이렇게 이어가는건) 정말 기적에 가까워요.”
10월부터는 선배 배우들도 <지하철 1호선>에 손님으로 탑승한다. 장현성, 배해선 등이 일정을 잡는 중이고, 설경구는 “잘할 자신이 없어 거절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하철 1호선>은 원작 극장인 독일 그립스 극단의 초청을 받아 내년에 독일서도 공연한다. 국내에선 올해 100회 공연이 끝나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김윤석은 “통일이 되고 나서도 계속해 평양 버전이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면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1000회 때 선녀 역을 했던 배해선도 “지하철 멈추면 사고 나지 않나. 정비해가면서 계속 달렸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비쳤다.
<지하철 1호선>을 초연 때부터 지켜 봐온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성공한 레퍼토리지만 새로운 세대는 그간 보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국제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 다시 움직이는 것 자체로 뮤지컬사에서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학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