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가 14만원이던 대형극장의 뮤지컬 티켓값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현재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중인 <웃는 남자>가 주말(금~일)·공휴일가를 전석 1만원 올려 15만원을 받는데 이어 11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지킬앤하이드>도 주말·공휴일가를 15만원으로 정했다. 주중보다 주말가를 높여 받는 정책이 업계에서 처음 나온 것도 아니고, 15만원이 역대 뮤지컬 티켓값 최고치를 찍은 것도 아니지만 이런 흐름이 확산된다면 ‘시장 통상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두 작품이 연달아 주말가가 오르자 뮤지컬 팬들 사이에선 “이러다 대형극장들의 티켓값이 주말가를 시작으로 평일까지 오르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터져나온다.
현재 대극장 뮤지컬 티켓값은 VIP·R·S·A·B석 등 좌석등급별로 14만원~6만원대다. 창작 초연인 <웃는 남자>나 14년 된 <지킬앤하이드>나 제작사들이 주말 티켓값 인상의 이유로 드는 건 “인건비 등 제작비 상승”이다. 하지만 스타 캐스팅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웃는 남자>의 박효신, <지킬앤하이드>의 조승우·홍광호는 업계에서 회당 5천만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는 걸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킬앤하이드>의 조승우·홍광호·박은태 섭외는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미친 캐스팅’이란 평을 들을 만큼 몸값이 비싼 인기 배우들을 총출동시켰다. 지난 22일 풀린 1차 티켓은 2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티켓을 잘 팔려면 ‘팬덤’을 가진 스타캐스팅이 필요하고, 스타를 캐스팅하면 제작비가 오른다.
제작비 증가는 다시 티켓값 상승을 불러 악순환이 이어진다. 스타캐스팅으로 제작비가 상승한 <웃는 남자>와 <지킬앤하이드>는 올해 같은 극장에서 공연한 <안나 카레니나>(예술의전당)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샤롯데씨어터)보다 VIP석 비율이 3~4%포인트 가량 높은 편이다. 국내 뮤지컬은 공연기간이 3~6개월로 짧아 제작비를 빠르게 회수하려면 집중적으로 티켓 판매 수익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마다 제작비가 다른데 시중 통상가격이 정해져 있으니 제작사들은 손익분기점(BEP)을 설정한 뒤 좌석비율로 수익을 맞춘다. 손익분기점이 높을수록 VIP와 R석 비율이 늘어나는데 2000년대 초반만 해도 VIP석이 전체 객석의 10∼20%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30~40%대에 이른다. 층별로 객석과 무대간 거리감이 다른데도 사이드 좌석을 제외한 1층 전체와 2층 앞자리까지 VIP석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제작사들이 제작비용에 대한 부담을 관객에게 떠넘기지 않고 장기 공연을 통해 박리다매로 수익을 내는 방법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쉽지 않다. 국내 뮤지컬계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나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처럼 한 작품이 한 극장에서 무기한 공연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지 않다. 티켓값 상승에 대한 지적이 나올 때마다 좌석을 쪼개 티켓값을 세분화한 브로드웨이 시스템 얘기가 나오지만 우리 실정에 맞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창작 공연의 경우 초기 제작비가 많이 들어 티켓 할인율을 높게 책정할 수 없다”면서 “어느 작품이 티켓값을 올렸다고 제작사들이 바로 따라가지는 않겠지만 제작비는 실제로 매년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티켓값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상승된 제작비에 맞춰 티켓값을 정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작품의 타깃 관객층이 지불할 수 있는 티켓값에 맞춰 제작비를 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일본을 닮아가는데 일본도 배우에 의존한 공연들이 많다”면서 “그러나 일본의 경우 작품의 관객층이 얼마를 낼 수 있겠구나 미리 계산해 제작비를 산출한다. 공연장의 규모에 따라 일률적으로 티켓 가격을 산정하기보다는 작품 타깃층에 따라 가격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관객들의 가격 저항력이 한국만큼 크지 않다”고 말했다.
원종원 뮤지컬평론가(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는 “지금도 티켓값이 비싸 뮤지컬 진입장벽이 높은데 티켓값을 더 높이는 것은 독이 될 수 있다”면서 “제작사들이 스타캐스팅으로 제작비를 높이는 악순환을 반복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티켓값을 낮추고 대중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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