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장기수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신대방동 ‘푸른영상’ 사무실에서 <송환2>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3년만에 재개된 감격적인 만남이지만 이번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쓸쓸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한국 사회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비전향장기수들도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이 그립다. 장기수들이 북에 돌아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송환>(2003)에 이어 <송환2>(가제)를 제작 중인 김동원(63) 감독도 마음 한 켠이 아리다.
<송환2>는 2000년 6·15 공동선언에 따라 장기수 63명의 1차 송환이 이뤄졌을 당시 미처 신청하지 못했거나 전향을 했다는 이유로 제외된 이들의 이야기다. <송환> 때처럼 특별한 주인공 없이 여러 장기수가 출연하는데 이가운데 김영식(84)씨가 이번 이산가족상봉 1차 대상자에 들어갔었다. ‘남파간첩’을 실어나르던 배의 무전수였던 김씨는 1962년 남으로 넘어왔다 체포됐다.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전향 신청을 했던 그는 88년 출감한 이후 ‘강제전향 무효 선언’을 하면서 2차 송환을 요구 중이다.
김씨를 따라 금강산에 가서 상봉 장면을 찍을 계획에 김동원 감독도 잠시 마음이 분주했다. 하지만 김씨는 가족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최종 명단에서 빠졌고, 김 감독의 <송환2>는 결국 만남의 마침표를 찍지 못한 이야기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김 감독을 20일 그의 사무실인 서울 관악구 ‘푸른영상’에서 만났다.
- 가족을 만날 기회를 잃어 김영식씨의 상심이 크겠다.
“김 선생님이 지난 7월 초에 1차 명단 500명에 들어갔다고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8월 첫 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다가 뒤늦게 ‘불능’이라는 사유를 들었다. 김 선생님 집이 장전항이라고 금강산 가는 항구 근처인데 가족 확인이 안 된다는 답변이었다. 북에서 떠나올 때 아내와 두 살짜리 큰아들, (한 살 된)딸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생사확인도 안 되는 상황이니까 마음이 안 좋으시다.”
- 이산가족상봉을 대비해 촬영 가능 여부를 알아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김 선생님이 1차 대상자에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따라갈 방도를 알아봤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남북교류위원회가 있다길래 그쪽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문의했더니 통일부에 부탁하라고 하더라. 통일부에 연락하니 적십자사 소관이라고 했다. 촬영이 여의치않아 아는 지상파방송 기자에게 김 선생님을 집중적으로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기자들 역시 공동취재단으로 들어가는 거라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해 난감했었다.”
비전향장기수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신대방동 ‘푸른영상' 사무실에서 <송환2>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현재 <송환2> 촬영은 어느 정도 됐고, 개봉 시기는 언제로 잡고 있나?
“<송환2>는 2차 송환 요구가 나온 2001년부터 찍고 있다. 2차 송환을 요구한 분들이 33명인데 그 사이 15명이 돌아가시고 지금 18명만 남았다. 다들 여든이 넘어 연로하신 상태로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다. <송환2>는 시나리오가 있는 게 아니라서 얼마나 진행됐다고 말할 수가 없다. 제목도 미정이고, 개봉 시기도 확답을 줄 수 없는데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개봉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 그동안 2차 송환이 안 된 이유가 뭔가.
“2005년 10월에 송환운동하던 정순택 선생님의 유해를 북으로 보내게 되면서 희망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때 연말까지 다들 북에 보내준다고 해 짐도 싸고 그랬었다. 그런데 우익들이 장기수들 묘를 뒤집고 영등포역에 가스통 들고 나타나 난리 치고 하면서 무산됐다. 노무현 정권까지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꺾였다.”
-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문재인정부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적이긴 한데 내가 느끼기엔 다들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다. 모처럼 분위기가 좋은데 송환 요구하면 우익들이 다시 일어나 복잡해질까 봐 입을 다무는 것 같다.”
-장기수들의 가족상봉은 아니더라도 김 감독이 북한 현지에 가서 찍는 방법은 없나?
“2005년에 장기수들이 북에 갈 것 같으니까 가는 과정을 찍으면 좋겠다 했었는데, 선생님들이 못 가시게 된 뒤엔 북한의 가족들이라도 찍어오면 좋겠다 싶어 방법을 계속 찾아봤다. 몇해 전 노르웨이쪽 프로덕션과 공동제작을 계획해 스웨덴·중국 북한 대사관 등에 문의도 해봤는데 결국 안됐다.”
- <송환2>에 고민이 깊은 듯하다.
“인상적인 사건없이 내용이 무겁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이북 출신 이산가족이라 두 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를 <송환2>에 붙여볼까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부모님 영화) 역시 북한을 가야 완결이 되는 거라…. 아버지는 생전에 고향에 가보고 싶어했고, 어머니는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직은 말로 못해줄 사정이 두 분에게 있다. 전향장기수들의 심정은 복합적이다. 가도 환영을 못 받을 것 같아 망설이면서도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가고 싶어한다. 난 남한이 천국이 아니듯이 북한도 천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 촬영을 얘기하면 ‘학생 때 NL(민족해방)이었냐’고 말하는데 학생운동 안 했다. 북한을 동경해서가 아니라 기록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자 개인적인 이유로 북한에 가서 촬영하고 싶은 거다.”
- 요즘 한반도 분위기 어떻게 보고 있나?
“재작년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만날 거라 예감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원하는 건 경제제재 풀라는 것이고 그 정도는 미국서 받을 수 있겠다 싶어 9월에 종전선언도 할 것 같다. 두 번째 예감도 맞아야 할 텐데.(웃음) 이건 다른 얘기지만 지난 연말에 6개월 동안 남미 여행을 다녔다. 만나는 이들마다 ‘남에서 왔냐, 북에서 왔냐’ 묻더라. 그래서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다. 우리나라 통일 될거다’라고 대답하며 다녔다.”
- 텔레비전에서 이산가족상봉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산가족들이 만나면 부둥켜안고 울고 웃지 않나. 난 그런 사람들보다 알 수 없는 착잡한 표정의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 88올림픽을 앞두고 도시미화 사업을 한다며 벌인 상계동 철거과정을 담은 대표작 <상계동올림픽>(1988) 이후 벌써 30년째 다큐를 만들고 있다. ‘독립다큐의 대부’로 불리는데 지난 시간을 돌이켜본다면.
“31년 전만 해도 다큐 감독이 될지 몰랐다. 지난해 개봉한 <내 친구 정일우>에 나온 (도시빈민운동가) 고 정일우 신부로부터 철거 현장 촬영을 부탁받고 우연히 상계동에 갔다가 내 팔자가 바뀌었다. 운명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 당시 어떻게 살지, 어떤 영화를 만들지 준비가 안 된 상태였는데 계속 다큐를 10년 정도 만들어보니 이것밖에 할 게 없더라. 이 일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해오니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봉천동 철거민 등 만들어야 할 소재가 아직 많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