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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산토끼 날아가듯 즉흥연주 ‘술술’…관객 교감 ‘팡팡’

등록 2018-07-29 15:58수정 2018-07-29 21:39

평창대관령음악제 ‘네멋대로 해라’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대신
관객 직접 음·멜로디 제시하면
피아니스트 박종해, 즉흥곡 ‘뚝딱’

관객-연주자 웃음꽃 핀 소통무대
평창에 재현된 ‘바로크식 즉흥무대’
“지루할 틈 없이 즐거운 공연”
지난 2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박종해 피아니스트가 즉흥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지난 2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박종해 피아니스트가 즉흥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여러분이 네 개의 음을 주시면 그걸로 즉흥 연주를 해볼게요. 음을 던져주시겠어요?”

지난 2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선 이색적인 연주 풍경이 펼쳐졌다.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박종해(28)가 관객들에게 음을 요청하자 객석에서 “솔샵” “미” “디플랫” 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중이 불러주는 대로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던 박종해는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이군요. 뭐든 해 보겠습니다” 하더니 피아노 앞에 앉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앉아있던 그의 손이 피아노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개의 음을 활용한 조성으로 맑은 음색을 쏟아내다가도 건반을 부술 듯 격정적인 연주가 이어졌다. 마치 원래 있던 곡을 연주하듯 건반 위의 손은 망설임이 없었고 즉석에서 뚝딱, 8분 길이의 곡이 만들어졌다.

이날 박종해의 공연은 ‘평창대관령음악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네 멋대로 해라’였다. 관객들이 던진 주제나 멜로디에 맞춰 즉석에서 곡을 뽑아내는 즉흥 연주회다. 지금은 작곡가와 연주자 역할이 분리돼 연주자가 악보에 있는 대로 연주하지만 200여년 전 바로크 시대에는 즉흥 연주가 성행했다. 당대 유명한 작곡가인 모차르트, 베토벤도 뛰어난 즉흥 연주가로 이름을 높였다. 클래식 음악사를 장식했던 음악회가 평창에서 재현된 셈이다.

이날 한 시간 동안 앙코르를 제외하고 네 곡을 즉흥 연주로 들려준 박종해를 무대 뒤에서 만났다. 지친 표정의 그는 “공연이 끝나고 나니 이렇게 쳐볼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면서 “즉흥 연주의 매력은 관객과의 교감인데 관객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박종해 피아니스트가 관객들에게 즉흥연주에 대해 말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지난 2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박종해 피아니스트가 관객들에게 즉흥연주에 대해 말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이번 무대는 손열음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평소 연습실에서 놀이하듯 즉흥 연주를 하는 박종해를 잘 아는 손 감독은 “선물 같은 재능”이라며 순발력 있는 그의 연주실력을 칭찬했었다.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그의 ‘놀이’가 처음 무대 위로 올라온 건 2016년 독주회 때다. 당시 앙코르로 거쉰의 ‘서머타임’을 갖고 노는 3분짜리 연주를 선보였는데 청중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내친김에 지난해 독주회에선 공연 2부(30분)를 즉흥 연주로 채웠다. 올해 음악제에선 지난해와 다른 새로운 무대를 꾸미고 싶어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인 작곡가 손일훈을 무대로 불러 듀오로 즉흥 연주 두 곡을 뽑아냈다. 네 개의 손이 한 대의 피아노를 악보도 없이 치면 팔이 엉킬 법도 한데 두 사람의 연주는 무리 없이 흘러갔다. “옛날부터 죽이 잘 맞아 즉흥 연주를 하며 같이 놀던 친구예요. 이번에도 별다른 얘기 없이 음을 주고받으며 연주했죠. 신경 쓴 건 지금 치는 곡을 언제 끝낼 것인가 뿐이었어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손이 움직이는 대로 곡을 뽑아내다 보니 때로 익숙한 멜로디가 들리기도 했다. 로시니의 ‘윌리엄텔 서곡’이 잠깐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라흐마니노프풍의 장중한 연주가 이어지기도 했다. “즉흥 연주는 청중이 완벽한 화음을 던져주면 더 어려워요. 차라리 불협화음을 주면 뭔가를 더 찾게 되고 찾았을 때 희열도 느끼게 되죠. 연주를 하면서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지난 2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온 관객 백서현(맨 왼쪽)이 피아니스트 박종해에게 즉흥연주를 위한 음을 제안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지난 2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온 관객 백서현(맨 왼쪽)이 피아니스트 박종해에게 즉흥연주를 위한 음을 제안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순서였다. 동요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객석에서 ‘섬 집 아기’ ‘곰 세 마리’, ‘학교 종이 땡땡땡’, ‘작은 별’ 등의 곡이 수없이 쏟아졌다. 박종해가 ‘나뭇잎배’를 잘 모르는 표정을 짓자 한 청중은 “낮에 놀다 두~고 온”이라며 앞 소절을 노래해 객석에선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청중들의 열띤 반응에 “동요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잠시 고민하던 박종해의 선택은 ‘산토끼’였다. 산토끼를 변주한 곡은 산토끼가 껑충껑충 뛰다 못해 날아갈 듯 절정으로 치달았는데 어느 순간 ‘나비야’로 끝이 났다. 박종해는 연주를 마치고 “하다 보니 딴 게 됐어요”라며 머쓱해 했고, 청중은 웃으며 큰 박수를 보냈다. 즉흥 연주에서나 맛볼 수 있는 재미였다.

이날 공연을 보러왔다가 무대에 올라 피아노 건반을 직접 눌러 네 개의 음을 제안하는 경험을 했던 백서현(13)은 “원래 있던 곡을 연주하듯 지루하지 않게 연주해줘 즐거운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평창/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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