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웃는 남자>. 이엠케이뮤지컬컴퍼니 제공
“자, 이제 한번 들으면 두 번 듣고 싶은 비참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지.”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1869)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7세기 영국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가 귀족들의 구경거리로 팔기 위해 입을 찢은 소년 그윈플렌의 이야기다. 그윈플렌을 키운 유랑극단장 우르수스의 말처럼 ‘비참하지만 신비로운’ 이야기다. 이미 영국 등에서도 만들어진 바 있지만 세계를 누빌 만큼 성공한 프로덕션이 없는 이 뮤지컬을 국내 제작사인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가 “전 세계 풀 라이선스 수출”을 목표로 제작에 나섰다. 제작엔 175억, 5년간의 세월이 투자됐다. 2년 전 창작뮤지컬 <마타하리>가 제작비 120억으로 업계를 놀라게 했고, 최근 1000만 영화가 된 <신과 함께-죄와 벌> 한 편 제작비가 약 200억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웃는 남자>는 ‘블록버스터급 뮤지컬’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 이엠케이뮤지컬컴퍼니 제공
첫인상은 황홀했다. 제작비를 무대에 다 쏟아부은 듯 그윈플렌의 찢어진 입술을 모티브로 쓴 무대는 세찬 풍랑이 이는 바다, 눈보라 치는 들판, 화려한 궁궐의 가든파티, 유랑극단으로 대표되는 서민들의 세계를 쉴 새 없이 보여준다. 뮤지컬 시장의 세계 흐름이 무대 세트 제작비용을 줄이려고 영상을 많이 사용하는 것과 달리 <웃는 남자>는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현하고자 한다.
<지킬 앤 하이드> 등의 음악을 만든 프랭크 와일드혼의 대중성 있는 노래도 공연시간 160분(인터미션 제외)을 꽉 채운다. 그윈플렌이 앞을 보지 못하는 여주인공 데아와 함께 부르는 ‘나무 위의 천사’나 유랑극단 단원들이 강물을 튕기며 춤추는 장면에서 나온 ‘눈물은 강물에’, 유랑극단이 선보이는 집시풍 음악들도 귀를 사로잡는다. 바이올린 솔로 연주자를 무대 위에 올려 활용한 점도 칭찬할 만하다. 장면전환의 빈 곳을 채우고, 주인공이 말로 다하지 못하는 분노와 슬픔, 기쁨 같은 감정을 선율로 채워주는 일등공신이다. 박병성 뮤지컬 평론가는 “웃는 남자의 입술을 포인트로 살린 무대나 화려한 의상 등 압도적인 장면이 많았다”면서 “개선점이 일부 보이지만 창작 초연 뮤지컬치고는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 이엠케이뮤지컬컴퍼니 제공
문제는 드라마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된다. 그윈플렌과 데아의 사랑, 그리고 “상위 1%”인 지배층의 탐욕과 그로부터 고통받는 서민들의 삶이다. 뮤지컬은 방대한 서사의 원작에서 표면적 사건만 가져오다 보니 일부 장면에서 몰입도가 떨어졌다. 데아와의 비극적 사랑이 눈물겹지도 않고,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는 주제도 직설적인 대사로만 전달될 뿐 가슴을 치진 않는다. 정수연 뮤지컬 평론가는 “빅토르 위고의 작품은 서사가 방대해 인물과 사회상을 개연성 있게 압축하기가 힘들어 <노트르담 드 파리>처럼 ‘송스루 뮤지컬’(대사 없이 노래로 하는 형식)로 많이 푼다”면서 “하지만 <웃는 남자>는 텍스트의 매력을 강조하면서 음악도 송스루 뮤지컬처럼 많이 넣어 방향성이 모호하다”고 평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 이엠케이뮤지컬컴퍼니 제공
개막 2주차를 지난 지금 관객들의 평가도 비슷하다. 단선적인 드라마, 아직 제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그윈플렌 역의 아이돌 그룹 ‘엑소’ 수호 등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반면, 독창적인 세트와 의상 등에 대해선 “월드클래스 수준”이라는 호평이다. 제작사는 벌써 일본 라이선스 판매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웃는 남자>는 8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이고, 9월4일부터 10월28일까지는 무대를 바꿔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이어진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