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좋아하던 노래는 평생 기억이 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음악이 그냥 스치고 지나간다.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한 해 한 해 힘들어진다. 어쩔 수 없다. 근육량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성 또한 세월에 닳아 없어지기 마련이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 하루의 대부분은 요즘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서도, 듣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르는 노래들은 역시 오래전 감각의 근육이 말랑말랑할 때 마음에 안착한 노래들이다.
학창시절 내가 미친 듯 열광했던 가수들은 대부분 해외 록음악과 힙합 아티스트들이지만, 어른이 되고 뒤늦게 아이돌 그룹에 빠져든 적이 두어 번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걸그룹 티아라에게 홀려 있었다. 노래를 죄다 찾아 듣고, 노래방에서 부르고, 춤을 따라 추고, 뮤직비디오를 돌려보고, 너무 보고 싶을 때면 사심 가득 담아 내 프로그램에 섭외하고는 직업에 대해 감사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아무튼 난리도 아니었다.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키’군에게 빠져들고 있다. 샤이니 노래 가사를 몽땅 외우는 정도까지는 아니고, 키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전 회차를 찾아보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유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그냥…, 보고 있으면 좋다. 듣고 있으면 귀가 흐뭇한데 어떡해.
내 또래의 아재 아지매들은 아이돌 문화를 체험한 최초의 세대다. 지금은 아닐지라도, 학창시절에는 대부분 한두 번 정도는 아이돌 그룹에 빠진 적이 있을 거다. 취향 따라 제각각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의 아이돌 문화를 처음 탄생시킨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이돌 그룹의 시조새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
벌써 30년도 더 전에 결성된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현재의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지고 발전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일단 기획자가 전면에 나서서 팀을 꾸렸다. 이수만이 없는 에스엠(SM)이나 박진영 없는 제이와이피(JYP), 양현석 없는 와이지(YG), 그리고 소속 가수들을 따로 때놓고 생각하기 어렵듯이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뒤에도 걸출한 프로듀서가 있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모리스 스타라는 인물이다. 그가 기획자로서 첫 성공을 맛본 사례는 뉴 에디션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얻은 뉴 에디션은 젊은 흑인 남자 다섯 명으로 만든 그룹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남편이자 솔로 가수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바비 브라운이 바로 뉴 에디션 출신이다. 훗날 모리스 스타는 인종차별적인, 어쩌면 역차별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발언을 하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뉴 에디션 멤버들이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었다면 20배는 더 성공했을 것이다.”
그래서 만들었다. 뉴 키즈 온 더 블록. 그의 간절한 바람대로, 예쁘장하고 재주 많은 백인 꼬마 아이들을 모아 만든 팝 댄스 팀이었다. 사진을 보면 깜짝 놀라거나 웃음이 터질 정도로 두 그룹은 닮았다. 이름만 비슷한 게 아니다. 패션부터 안무, 심지어 표정들까지 전부 미묘하게 다르면서 미묘하게 비슷하달까. 뉴 에디션의 첫 음반 타이틀이 ‘캔디 걸’이라면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히트곡 중에 ‘커버 걸’이 있다. 기획적인 측면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뉴 에디션의 백인 버전이 뉴 키즈 온 더 블록이다.
1992년 내한 공연 당시 사고 모습. 이정우 선임 기자 woo@hani.co.kr
기획자의 의도 혹은 바람대로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뉴 에디션보다 20배쯤 더 성공했다. 미국 내에서만 인기가 있었던 뉴 에디션과 달리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인기는 태평양 건너 대한민국에까지 번졌다. 군사정권의 엄혹한 체제를 뚫고 들어온 광기의 물결이었다. 결국 내한공연까지 펼쳤는데, 널리 알려진 대로 열성 소녀팬들이 한데 몰리다가 깔려 죽는 인명사고까지 발생해 기성세대에게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이 일로 인해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아이돌 그룹의 상징으로 등극한다.
데뷔 후 5,6년간의 전성기를 누리고 서서히 솔로 활동을 병행하다가 팀을 해체하는 수순까지.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그야말로 아이돌 그룹 한 살이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 미국에서는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엔싱크’ 등이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대를 이었으나, 21세기 들어서는 흐름이 아닌 듯하다. 대신 케이팝이라고 불리는 한국 아이돌 음악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솔직히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 영상과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뮤직비디오를 비교해보면, 세월 차이를 참작하더라도 너무 차이가 난다. 방탄소년단의 안무에 비하면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안무는 초등생 율동이랄까. 미국 팝 시장에서 아이돌 흐름이 움츠러든 이유 중 하나가 케이팝이라는 생각도 든다. 1990년대 일본 전자제품이 전 세계를 사로잡은 것처럼, 지금은 어느 나라의 아이돌 그룹과 비교해도 케이팝 팀들의 수준이 월등하다.
엑소와 방탄소년단의 공연에서 눈물 흘리는 아이들처럼, 우리 ‘아재, 아지매’들은 수십 년 전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노래를 온종일 끼고 살았다. 요즘처럼 푹푹 찌는 초여름, 땀내조차 푸르렀던 그 시절의 여름을 생각하며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노래를 다시 들어보자. ‘스텝 바이 스텝’은 촌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투나잇’ 이나 ‘행잉 터프’ 같은 노래는 꽤 신선하다. 나는 이미 듣고 있다.
어,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왜 나도 모르게 어깨춤이, 콧노래가…, “투나잇! 투나잇! 랄랄랄랄 랄라 투나잇!”
에스비에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