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 출연한 피아니스트 이범재씨가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안녕하세요. 피아니스트 이범재입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100회 공연을 맞아 스페셜 연주를 준비했어요. 사실 제가 1년 반 넘게 작곡을 못 했는데 이 공연 덕분에 다시 곡을 쓸 수 있게 됐어요. 곧 나올 새 음반에 수록된 ‘비가 내리면’과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섞어서 들려드릴게요.”
지난달 20일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공연이 끝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대극장 용이 순간 클래식 콘서트홀로 바뀌었다. 배우들을 향한 휘파람과 우렁찬 박수로 끝나는 보통의 뮤지컬과 달리 관객들은 숨죽이며 무대 위 그랜드 피아노를 응시했다.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연주가 공연장을 비처럼 적셨다.
<라흐마니노프>는 라흐마니노프가 ‘교향곡 1번’의 실패 뒤 곡을 못 쓰다 정신분석학자 니콜라이 달을 만나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재기하기까지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뮤지컬 노래 모두 라흐마니노프의 연주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여타 뮤지컬보다 음악 비중이 월등히 높다. “뮤지컬 보러왔다 클래식 공연을 보고간다”는 평이 쏟아지는 공연에서 이범재(32) 피아니스트는 초연부터 삼연인 올해까지 피아노 연주를 맡고 있다. 4일 오후 공연장에서 만난 이범재는 “준비하던 뮤지컬 작품이 엎어지면서 슬럼프 비슷한 게 왔었는데 이 공연이 다시 작곡할 수 있는 힘을 줘 100회 때 스페셜 연주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극 중 니콜라이가 라흐마니노프에게 하는 대사로 ‘당신은 새로운 곡을 쓸 수 있습니다’가 있어요. 재연 때까지는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던 대사였는데 힘들 때 들으니 큰 힘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이범재는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이다. 군대에서 작곡한 군가가 지정 군가가 되면서 창작활동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제대 뒤 뮤지컬 공연쪽에 뛰어들었다. 뮤지컬 <쓰릴미> 피아노 연주, 뮤지컬 <투모로우 모닝>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배우가 아닌 피아니스트 캐스트를 보고 공연을 찾는 관객이 생길 만큼 2인극인 <라흐마니노프>에서 그의 역할은 연주자에 그치지 않는다. 무대 아래가 아닌 위에서 현악 8중주단과 함께 연주하면서 라흐마니노프역을 맡은 배우를 대신해 피아노도 친다. ‘제3의 배우’다. “뮤지컬은 클래식과 드라마적인 표현이 달라요. 제가 노래하고 연기를 하지 않지만 연주에서 감정이 다 드러나죠. 반주가 아니라 듀오로 무대에 선다고 할 수 있어요.”
피아노는 악기 자체가 하나의 오케스트라다. 88개 건반이 모든 음을 표현할 수 있는 데다 모든 악기의 표현법을 담아낼 수 있다. “음악은 마음의 소리”라는 극 중 대사처럼 그의 연주엔 라흐마니노프의 절망, 환희 같은 복잡한 마음이 담겼다. “라흐마니노프 곡은 쓸데없는 음이 하나도 없어요. 슬픈데 아름다운 연주곡이 많아요. 우리나라 정서와 잘 맞고 뮤지컬과도 잘 어울리죠. 대신 모든 곡이 어렵다 보니 기교와 음악성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손이 커야 연주하기 좋아요.(웃음)”
라흐마니노프처럼 슬럼프를 깨고 나온 그는 지난달 말 직접 작곡한 5곡의 피아노 연주곡을 담은 미니앨범 <꿈>을 냈다. “비가 올 때 주로 곡을 써서 그런지 비 오는 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는 그는 올가을에 두 번째 정규앨범도 발표할 예정이다. “욕심이 많은 편이에요. 앞으로 음반도 꾸준히 낼 거고요. 올해 개막예정인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오디너리 데이즈>는 <쓰릴미>처럼 1대의 피아노가 음악을 맡는데 이 공연에 참여해요. 한 연극에선 제 음반 수록곡들이 쓰일 예정이고요. <킹키부츠> <위키드> 같은 밝은 작품을 좋아하는데 앞으로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다양한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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