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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1인 10역’ 변신의 귀재들…“집 나간 정신 찾아요”

등록 2018-07-03 05:01수정 2018-07-03 10:15

‘캐릭터 저글링’ 연극 2편

100살 노인 코믹 탈출기 ‘창문 넘어…’
유언장 고치기 소동 ‘달걀의 모든…’
모든 배우들이 1인 10역 이상 소화
순식간에 노인→여자→코끼리 변신
관객은 배우들 변신술에 재미 느껴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연극열전 제공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연극열전 제공
“율리우스, 멋져요.” “아니, 난 지금 양동이야.”

한 명의 배우가 1초 사이에 노인이었다가, 여자도 되었다가, 코끼리도 되었다가, 양동이로도 변한다. 한몸에 세 개의 캐릭터가 있어서 점잖게 또는 앙칼지게 대사를 읊다가 개가 돼 짖기도 한다. 공간배경이 인도네시아에서 프랑스로 넘어갈 땐 캐릭터 변신이 지치는지 “더럽게 힘들다, 봉주르봉주르”란 말이 툭 튀어나온다. 연기하는 배우들은 “집 나간 정신을 찾는 게 급선무”라고 하고, 관객들은 “배우들이 밥 네 공기는 먹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이 연극은 무대에 선 모든 배우가 ‘1인 10역’ 이상을 소화하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하 <100세 노인>)이다.

연극은 100살 생일에 양로원에서 도망친 주인공 알란의 현재와 1905년에 태어나 굵직한 현대사를 겪어온 그의 과거 경험이 교차하는 소동극으로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100년의 시간, 전 세계라는 공간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보여주다 보니 무대에 서는 다섯 명의 배우가 60여개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6일 개막하는 연극 <달걀의 모든 얼굴>(연출 이해제)도 4명의 배우가 10여명의 캐릭터를 중복해서 맡아 변신을 거듭한다. 불치병에 걸린 안면인식장애 주인을 두고 유언장을 고치려는 심복들의 이야기로, 주인인 장총재를 제외하고 집사·변호사·비서·각경이 역을 맡은 배우들이 장총재의 가족인 사모님·큰아들·작은아들·쌍둥이 딸·두 딸의 예비사위·작은아버지 등을 연기한다. 다역을 할 수밖에 없는 1·2인극을 제외하면, 등장 배우 모두가 1인 10역 가까운 캐릭터를 소화하는 이들 연극은 꽤 독특하다.

연극 <100세 노인>에서 ‘100살 알란’역을 맡은 23년 경력의 서현철 배우는 “연출자에게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런 연극이 있을까 되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16개의 캐릭터로 가장 많이 변신하는 ‘알란 4’역의 장이주 배우도 “캐릭터를 각기 다르게 보여주는 게 가장 신경 쓰였다.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마음으로 연기한다”며 웃었다. <100세 노인>의 연출을 맡은 김태형 연출가는 “저글링을 하듯 각각의 캐릭터를 순식간에 손에 쥐었다가 던져버리고 다른 캐릭터를 쥐어야 한다는 의미로 우리는 ‘캐릭터 저글링’ 연극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캐릭터 변신이 많은 연극은 무대 및 소품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100세 노인>은 알란의 기억을 꺼내서 보여준다는 의미로 여러 가지 크기의 서랍장을 기억저장소로 삼아 무대에 쌓고 활용한다. 변신 도구는 벨크로(찍찍이) 이름표다. 현재 인물은 하얀 바탕의 이름표를, 과거 인물은 검은 바탕의 이름표를 쓰며 변신 때마다 서랍장에서 꺼내 떼었다 붙인다. 한 번에 세 캐릭터를 연기할 땐 가슴과 등, 팔에 세 개의 이름표가 붙기도 한다. 배우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무대에는 8명의 사람과 3마리의 동물이 있습니다”라고 능청맞게 설명할 때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연극 <달걀의 모든 얼굴>. 쉘위토크 제공
연극 <달걀의 모든 얼굴>. 쉘위토크 제공
장총재의 집이 배경인 <달걀의 모든 얼굴>은 캐릭터별 특징을 잡은 소품을 활용한다. <달걀의 모든 얼굴>의 이찬남 프로듀서는 “작은아버지는 지팡이, 사모님은 장갑, 쌍둥이 딸은 부분 가발 등 각 인물의 소품을 설정해 여러 배우가 한 캐릭터를 번갈아가며 연기해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집사 역을 맡은 배우가 사모님, 쌍둥이 딸도 연기하는데 장총재가 ‘내가 아버지인데 딸들을 못 알아볼 수 없다’며 말하는 장면 등이 웃음 포인트다.

저글링 하듯 캐릭터를 바꾸는 연극은 배우들에게 빠른 순발력과 탄탄한 연기력을 요구한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아 배우들 간의 호흡도 중요하다. 서현철 배우는 “보통 상대 배우가 실수할까 봐 눈치껏 도울 때도 있는데 이 연극은 내 것 챙기기 바쁘다”면서 “같은 대사도 배우마다 표현력이 다르다 보니 더블캐스트 된 배우들의 다양한 조합으로 연극을 여러 번 봐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들은 연극적인 요소가 강조된 배우들의 변신술에서 재미를 느낀다. 장이주 배우는 “과거에는 관객들이 드라마적인 걸 좋아했다면 최근에는 배우들이 무대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이 프로듀서도 “연극은 무대가 협소해 많은 배우가 함께 설 수 없는데 다역변신이 주·조연 상관없이 배우들의 연기력을 즐길 수 있게 해줘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일송 연극평론가는 “다역 변신의 재미를 주는 공연은 10년 전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면서 “주로 코믹극에서 많이 쓰이는데 극의 무게감을 놓치지 않도록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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