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재개관하는 서울 명동 삼일로창고극장. 서울문화재단 제공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습니다.”
<찾아가는 가족콘서트>를 만든 예술기획자 주홍미(51)씨는 10여 년 전쯤 서울 명동의 삼일대로 언덕 위에 있는 낡은 소극장 간판 옆에서 이 현수막 글귀를 봤다. 당시 어렵게 공연 살림을 꾸려가던 그에게 이 글귀는 큰 위로가 됐다. 주씨는 “우리가 예술을 통해 보고자 하는 건 예술작품 너머의 우리 삶”이라면서 “극장 건물은 예술로 위로받고 있는 당사자이면서 수많은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삼일대로 언덕 위의 낡은 소극장, 삼일로창고극장이 22일 다시 문을 연다. 폐관한 지 3년 만이다.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해 1975년 개관한 삼일로창고극장은 젊은 연극인들의 실험실 역할을 해 온 민간 소극장이다. 한때 김치 공장이나 인쇄소 등으로 쓰이는 등 경영난으로 6번의 개관과 폐관을 겪어야 했지만 40년간 공연된 작품 수만 279개에 달할 만큼 공연 예술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곳이자 관객들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주부 이민자(57)씨는 고등학생 때 이곳에서 생애 첫 연극을 만났다. “이오네스크의 <의자들>을 본 뒤 연극 세계에 매료돼 꾸준히 연극을 봐왔다”는 그는 “엄마랑 같이 연극을 보던 아이가 이제 연극 일을 하면서 ‘엄마의 업보’라는 농담을 한다”고 말했다.
삼일로창고극장이 다시 돌아온 계기는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소유주와 10년간 장기임대계약을 체결하면서부터다. 서울시는 삼일로창고극장을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재개관과 함께 주목할 부분은 다른 공연장과 달리 극장장이 없다는 것. 서울문화재단이 극장 운영을 위임받으면서 공공 지원을 받는 극장이 됐지만 프로그램 기획 및 예산 결정 등은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을 포함한 젊은 연극인 6명으로 구성된 민간 운영위원회가 책임진다. 우 위원은 “민간이 운영하던 극장의 역사성을 지키기 위해 운영위원회를 꾸렸다”면서 “삼일로창고극장은 80년대 연극의 중심지가 대학로로 옮겨가기 전까지 수많은 연극인의 숨결이 담겨 있기에 이번 재개관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재개관을 기념해 삼일로창고극장은 과거와 현재를 이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1977년 초연 당시 4개월 만에 6만 관객을 돌파한 배우 추송웅의 1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의 오마주 공연 ‘빨간 피터들’(29일~7월22일) 연작 시리즈를 무대에 올린다. 연출가 신유청의 <추ing_낯선 자>를 시작으로 연출가 김수희의
, 안무가 김보람이 연출하는 <관통시팔>, 연출가 적극의 <러시아 판소리-어느학술원에의 보고>를 차례로 선보인다. 재개관 기념전시로는 삼일로창고극장의 시작을 함께 한 극단 에저또의 1966년부터 1977년까지를 조명하는 아카이브 전시 ‘이 연극의 제목은 없읍니다’(22일~9월22일), 1975년 첫 개관 당시 개막작이었던 <새타니>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전시 ‘언더홀’(22일~7월21일) 등이 마련됐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