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수만 가지 소리를 만들어보았지만, 세상에 쓸모없는 소리란 없다. 아무리 사소한 소리도 그만의 몫이 있다.”
‘음향효과의 대부’로 불린 음향감독 김벌래(본명 김평호)씨가 지난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
고인은 현재 폐교되고 없는 서울 국립 체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극계에 뛰어들었다. 배우를 지망했으나 음향 스승인 심재훈씨를 만나 극단 신협과 국립극단 연극의 음향감독을 맡았다. 생업을 위해 1962년부터 <동아방송> 음향피디(PD)로 일하며 다양한 음향효과를 개발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광고 음향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 일상 용품을 사용해 콜라 광고의 병뚜껑 따는 소리를 만들어 내 창의력을 높이 산 콜라회사로부터 백지수표까지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고인의 지인이었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만약 김벌래가 백지수표를 받은 뒤에 실종된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쓴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라는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1975년 <동아일보> 언론자유투쟁으로 방송국이 거의 개점폐업 상태에 이르자 방송국을 나온 고인은 퇴직금으로 음향 스튜디오 ‘38오디오’를 차렸다.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 브이(V)> 음향을 맡아 인지도를 높인 그는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1993년 대전엑스포, 2002년 월드컵 등 여러 대형 이벤트 음향을 담당하기도 했다.
‘소리의 달인’이 됐지만 고인의 뿌리는 연극이었다. 그는 1961년에 극단 행동무대를 창립해 대표를 맡았고, 2002년에는 극작가 고 김상렬씨가 그를 모델 삼아 쓴 연극 <등신과 머저리>에서 1인 4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독특한 예명인 ‘벌래’도 연극판에서 만들어졌다. 몸집이 작고 붙임성이 있다며 연극계 대부인 이해랑·유치진 선생이 붙여준 별명 ‘버러지’에 착안해 ‘벌래(‘벌레’를 바꿔 부름)’로 살았다.
20년 가까이 홍익대 광고홍보학부 교수로 재직했던 고인은 2007년에 <제목을 못 정한 책>을 내고 학벌 사회에 대한 쓴소리를 내기도 했다. 고인은 책에서 “엘리트라고 불리는 소수가 학벌로 다수를 차별하고 있다”며 “이제는 확 정신을 차려서 학벌보다는 자기 일에 소신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로 평가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3일 오전 8시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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