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별세한 이영희(맨앞) 한복디자이너가 2015년 8월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실크로드 경주 2015 이영희 패션쇼’를 마치고 모델들과 함께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1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
고인은 한복의 세계화를 연 인물이다. 1993년 프랑스 파리의 ‘프레타포르테’(고급기성복) 패션쇼에서 원피스처럼 한복 치마만 입은 모델들이 맨발로 무대를 누비는 순간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전까지 세계 패션계에서 한복은 ‘기모노 코레’(한국의 기모노)로 불렸지만, 그의 쇼 다음날 프랑스의 권위지 <르몽드>는 3면에 ‘한복’(Hanbok)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소개했다. ‘오칭’을 바로잡은 것이다.
그뒤 고인은 12년간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24차례 참가한 데 이어 2010년 이후엔 파리 오트쿠튀르(고급맞춤옷)를 비롯해 미국, 영국 등에서 500회 넘는 패션쇼를 열었다. 2004년엔 뉴욕에 ‘이영희 한복박물관’을 열었고, 2008년에는 구글 캠페인 ‘세계 60 아티스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영희 디자이너가 1994년 파리 패션쇼에서 선보인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 <르몽드>에서 ‘바람의 옷'으로 호평하며 ‘한복’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사진 김중만 작가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업주부로 살던 30대 중반 부업으로 이불을 만들어 팔다가 남은 천으로 한복을 지으면서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41살이던 1977년에 ‘이영희 한국의상’ 간판을 내걸었다. 47살에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염직공예학을 공부한 그는 직접 천연염색으로 ‘이영희 색깔’의 한복을 지었다.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다만 늦은 마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복은 우리 자연 속에서 더욱 아름답다”는 소신에 따라, 2005년 배우 이영애와 함께 북한 금강산에서, 6년 뒤엔 울릉도와 독도에서 한복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의 한복 디자인을 맡아 1년간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2016년 독일 함부르크 패션쇼 때 “우리도 통일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그는 평창에서 남북단일팀 입장 장면을 보고 누구보다 감격스러워 했다. 올림픽 직후 탈진으로 쓰러졌던 고인은 한달 전쯤 폐렴으로 다시 입원했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임종 한 시간 전까지 “패션쇼를 하고 싶다”고 했던 그의 열정은 유언이 됐다.
유족은 남편 이종협씨와 딸 정우(패션디자이너), 아들 선우(미국 변호사)·용우(청담컨텐츠 이사) 사위 최곤(국제강재 회장)씨가 있다. 배우 전지현은 외손주며느리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5시다. (02)3410-6917.
김포그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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