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제이오쇼핑 ‘코빅마켓’의 한 장면. ‘코미디 빅리그’(코빅) 출연자들이 홈쇼핑 프로그램에 나와 코빅의 코너를 재연하며 제품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이다. 씨제이오쇼핑 제공
지난달 27일 밤 씨제이오쇼핑을 보던 시청자들은 채널 번호를 재차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박나래, 장도연, 황제성 등 <코미디 빅리그>(티브이엔·tvN)에 출연하는 코미디언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별여행’ ‘석포빌라’ ‘부모님이 누구니’ ‘나래바’까지 실제 방영 중인 꼭지(코너)를 그대로 선보였다. 그런데 ‘나래바 × 필립스’처럼 제목이 하나 더 붙었다. 씨제이오쇼핑이 <코미디 빅리그>팀과 협업(콜라보)으로 만든 <코빅마켓>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출연해 구매를 유도하던 티브이홈쇼핑은 이제 문화 콘텐츠와의 협업을 시도 중이다. 방송, 음악, 공연 등을 선보이면서 재미와 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코빅마켓>은 각각 청소기, 면도기, 아이스크림, 립스틱을 접목한 에피소드를 따로 만들어 <코미디 빅리그>의 번외편처럼 홈쇼핑에서 방영했다. <티브이엔> 쪽은 “<코미디 빅리그> 작가가 대본을 쓰는 등 제작진이 직접 참여했다”며 “<코빅마켓>은 방송 콘텐츠와 코머스(쇼핑)를 결합한 최초의 시도”라고 설명했다.
오마이걸 반하나는 3일 새벽 1시 파격적으로 롯데홈쇼핑 채널을 통해 신곡을 발표했다. 더블유엠(WM)엔터 제공
음악과 홈쇼핑의 협업도 구체화되고 있다. 3일 새벽 1시에는 아이돌 ‘오마이걸’의 유닛 그룹인 ‘오마이걸 반하나’가 롯데홈쇼핑에서 이색 쇼케이스를 열었다. 가수가 홈쇼핑에서 음반을 판 적은 있었지만 신곡 발표 무대를 홈쇼핑에서 갖는 것은 처음이다. 오마이걸 반하나는 이를 소셜미디어에서 생중계하며 시청자 질문도 받았다. 지난달 10일 현대홈쇼핑에서는 뮤지컬 <시카고> 티켓을 팔면서 출연배우 최정원, 아이비, 남경주가 공연의 일부를 시연했다. 롯데홈쇼핑은 문화 콘텐츠와의 협업이 승산 있다고 보고 올해부터 뮤지컬과 협업하는 프로그램인 ‘엘스테이지’를 따로 만들었다. 올 초 <타이타닉>에 이어 지난달 25일 <닥터지바고> 티켓을 판매하며 배우가 직접 공연 소개를 하고 작품에 따라 미니 공연도 펼쳤다.
씨제이오쇼핑 ‘코빅마켓’의 한 장면. ‘코미디 빅리그’(코빅) 출연자들이 홈쇼핑 프로그램에 나와 코빅의 코너를 재연하며 제품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이다. 씨제이오쇼핑 제공
홈쇼핑과 콘텐츠의 결합은 ‘쇼퍼테인먼트’(쇼핑+엔터테인먼트)의 진화다. ‘쇼퍼테인먼트’는 단순한 상품 설명을 넘어 볼거리를 제공하며 지갑을 열게 하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2010년 듀오 유브이(UV)의 유세윤과 뮤지가 출연해 음반을 판매했던 것을 시작으로 본다. 당시는 본격적인 판매라기보다는 코믹한 깜짝 이벤트에 가까웠다. 2015년엔 루시드폴이 유희열 등 소속사인 안테나 뮤직 가수들과 함께 나와 7집 음반과 직접 재배한 귤을 패키지로 판매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슈퍼주니어가 앨범 20만장 이상 팔리면 홈쇼핑에 출연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홈쇼핑에 나와 패딩을 판매하며 시청자와 대화하고, 노래도 들려주는 등 일종의 토크쇼를 꾸몄다. 씨제이오쇼핑 쪽은 “음반 판매로 시작된 쇼퍼테인먼트가 공연을 선보이고, 협업해 새로운 콘텐츠를 탄생시키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도는 주부 등 중장년층에 국한된 홈쇼핑 시청층을 20~30대로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미있는 콘텐츠로 일단 시선을 사로잡아 체류 시간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다. 음반과 공연 티켓은 홈쇼핑으로서는 돈이 되지 않지만, 잠재적 고객 확보에 요긴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빅마켓>은 동시간대(화 밤 10시45분~새벽 1시) 평균에 견줘 시청률이 4배 이상 높았다. <시카고> 시청률도 동시간대 평균의 3배가 넘는 등 콘텐츠 협업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높았다. ‘재미’가 ‘소비’로도 이어졌다. <코빅마켓>에서 판매한 상품의 2030세대 주문량은 지난 방송보다 갑절 증가하며 이례적으로 10억원어치나 팔렸다. <시카고>도 새벽 1시 평균 매출 1억원에서 4억여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콘텐츠와 홈쇼핑의 콜라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콘텐츠가 홈쇼핑사의 제품 홍보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탓이다. 특히 방송 콘텐츠가 그렇다. <코빅마켓>은 8월1일 합병하는 씨제이오쇼핑과 씨제이이앤엠(E&M)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시도됐다. 씨제이오쇼핑의 자사 식기 브랜드인 오덴세는 씨제이이앤엠 채널인 <티브이엔>의 <윤식당 시즌2>에서 사용된 뒤 매출이 40% 이상 뛰기도 했다. 이런 시도가 가속화되면, 간접광고(피피엘)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관계회사 제품을 콘텐츠에 집어넣거나, 처음부터 제품에 맞춰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밀어주고 끌어주기식 거래가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콘텐츠의 인기가 제품의 신뢰도로 이어져 과장 광고의 우려도 있다. <코빅마켓> 방영 이후 “웃다가 나도 모르게 주문했다” “박나래의 설명에 신뢰가 간다”는 등 콘텐츠에 대한 호감을 제품의 호감으로 연결시키는 반응이 많았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콜라보라는 이름으로 콘텐츠와 상품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며 “이런 시도들이 결국 방송도 하고 제품도 파는 대기업들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관찰예능 등 일상의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에 계열사 제품을 노출하고 출연자의 입을 통해 찬사를 이끌어내는 스토리텔링이 가미되면 광고보다 강력한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