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카의 왕 율리시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오랜 방황과 모험 끝에 고향에 돌아온다. 전쟁은 끝났지만 트라우마는 남아 율리시스는 호기롭던 젊은 날의 그가 아니다. 20년간 남편을 기다려온 아내 페넬로페도 마찬가지. 율리시스의 귀향은 꿈에서도 갈망해온 일이지만 막상 돌아온 남편은 낯설기만 하다. 마침내 이뤄진 귀향은 두 사람에게 절실했던 만큼 기쁘기만 한 걸까.
통영국제음악제가 시작을 알린 지난달 30일 밤, 통영국제음악당의 블랙박스 극장에서 선보인 음악극 <귀향>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율리시스의 귀환>(1640)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줄거리나 음악을 해체해 새롭게 조립했다. 잘 알려진 고전을 비틀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17세기 바로크 음악에 한국 전통가곡을 접목해 이질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극장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패션쇼 런웨이처럼 긴 무대, 반짝이는 촛불, 매캐한 연기, 지이잉 거리는 음악을 마주하게 된다. 자갈이 흩뿌려진 긴 무대 끝에는 동서양의 연주자들이 배치됐다. 한쪽에는 한복을 입은 연주자들이 대금·거문고·해금·장구를 연주하고, 반대편에는 짙은 눈화장에 검은 옷을 입은 서양악기 앙상블이 바이올린·비올라를 비롯해 바로크 악기인 테오르보·비올라다감바 등을 연주하며 연기도 한다.
율리시스와 페넬로페 사이에는 정서적 거리가 존재한다. 고향 땅을 밟고도 고향인 줄 모르는 율리시스(바리톤 이응광)는 “인생은 금방 부러질 듯한 운명의 노리개일 뿐”이라며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노래한다. 남편을 그리워하는 페넬로페(소프라노 안나 라지에예프스카)는 “돌아와요, 돌아와 줘요, 율리시스”를 애타게 외친다. 검은 한복을 입은 전통가곡 가수 이수자 박민희가 페넬로페의 그리움을 담은 아리아에 이어 한국 가곡 ‘동짓달’로 목소리를 보탠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러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공연은 동서양의 앙상블이 마주 앉은 첫 모습만큼이나 파격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가곡을 부르는 박민희는 때로 이탈리아어로 아리아를 부르고, 동서양의 연주자들은 서로의 자리를 오가며 함께 연주하고 춤을 추었다. 한국 가요도 등장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너는 내게 묻지만 대답하기는 힘들어”라는 가사가 담긴 김민우의 ‘사랑일 뿐이야’는 율리시스와 페넬로페 사이의 망설임을 보여준다.
<귀향>의 연출을 맡은 독일 오페라 감독 루트거 엥겔스는 “17세기 유럽 바로크 오페라와 한국 전통가곡은 다른 장소에서 만들어졌지만 닮은 부분이 많다. 두 음악은 느린 선율로 인간의 깊은 정서를 표현하는 부분, 연인을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가사 내용 등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말했다. “90년대 유명 가요라는 김민우의 노래 역시 들어보니 시대를 넘어 정서가 닮았다고 느껴져 사용했다”고 말했다.
음악극 <귀향>은 이번 통영음악제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세계 초연됐다. 이 때문에 독일 베를린에 묻혔다가 사후 23년 만에 고향 통영으로 돌아온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귀향과 율리시스의 귀향이 연관된 맥락으로 읽혔다. 2013년에도 통영음악제에서 오페라와 패션쇼가 어울어진 듯한 파격적인 공연<세멜레 워크>를 보여줬던 엥겔스는 “이번 작품이 윤이상의 여정을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극에 윤이상의 삶을 투영시켜볼 수 있다”면서 “고향과 귀향의 의미, 나아가 정체성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20년 만에 만난 페넬로페와 율리시스가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하지만 이질적인 음악들은 만나서 새로운 고향과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윤이상의 귀향(이장)도 단순히 유해가 돌아온 것이 아니라 보다 정신적이고 상징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을 본 윤호근 국립오페라단장은 “유럽에서 몬테베르디 오페라를 세 번쯤 봤다. 이번 무대에서 연출된 <귀향>의 음악은 생소했으나 정서는 비슷하게 담아낸 것 같다”면서 “특히 귀향의 어려움이나 귀향했을 때의 고통스러움 등을 담아내려 한 시도가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통영/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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