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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나영석, 박상혁 등 예능 피디들이 말하는 <무도>의 가치

등록 2018-03-26 05:00수정 2018-03-26 08:02

고작 예능프로그램 한편 사라지는 것뿐인데 세상 시끄럽다고? 그렇다. ‘고작 예능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13년간 사랑받으며 예능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무한도전>이 3월31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문화방송>(MBC)은 “휴식기”라고 말하지만, 현재로선 ‘사실상 종영’이다. 날벼락 같은 이별에 애청자는 슬퍼한다. 다른 예능 피디들조차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며 감정 이입한다. <무한도전>은 대체 어떤 프로였기에,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이어지는 걸까.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예능 피디들이 <무한도전>의 가치를 곱씹었다. 인기의 양대 산맥이었던 <해피선데이―1박2일>(한국방송2)을 연출한 나영석 <티브이엔> 피디, 과거엔 <라인업>(에스비에스), 현재는 <서울메이트>(올리브)로 동시간대 맞붙었던 박상혁 <올리브> 피디, 현재 예능 흐름을 이끄는 <티브이엔>의 이명한 본부장, 조연출 시절 2년6개월간 <무한도전>에 참여하며 예능의 기본기를 닦았다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문화방송) 박진경 피디다.

■ 성장스토리 담은 리얼버라이어티 시대 열다 모두 “지금의 리얼버라이어티 시대를 열었다”는 점을 높이 샀다. <무한도전>은 2005년 4월23일 ‘무(모)한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토요일>의 한 코너로 시작했다. 2005년 10월29일부터 <강력추천 토요일>에서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 ‘무한도전-퀴즈의 달인’으로 방영했다. 지금의 <무한도전>으로 독립편성된 건 2006년 5월6일부터다. 초창기 야외에서 소와 힘 대결을 하는 등 몸개그 위주였다면 독립편성되면서부터 캐릭터의 성장을 담은 리얼버라이어티로 변모했다. 이명한 본부장은 “<무한도전>이 리얼버라이어티의 선두주자로 포문을 열면서 관찰예능으로 확대재생산되는 등 대한민국 예능의 10년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형식 자체가 굉장히 신선했다. ‘리얼’이라는 화두가 그때 생겼다. 이후 김태호 피디가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자가발전하면서 메가트렌드가 됐다”고 말했다.

박상혁 피디는 “예능에서 드라마처럼 출연진에 캐릭터를 부여한 것도 <무한도전>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무한도전>은 초반 ‘유 반장’ 유재석, ‘박 사장’ 박명수, ‘식신’ 정준하, ‘어색한 뚱보’ 정형돈, ‘짧은 아이’ 하하, ‘퀵 마우스’ 노홍철처럼 실제 성격을 프로그램에 녹였다. ‘무한재석교’ 등 성격과 관계 형성에서 파생되는 에피소드가 재미를 선사하면서, 방영 초반 4~5%대였던 시청률이 쑥쑥 올랐다. 박상혁 피디는 “캐릭터가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스토리를 담은 게 혁신적이었다. 시청자들이 <무한도전> 멤버들을 갖고 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캐릭터가 대중과 친해지는 과정을 거쳤다. 캐릭터를 알고 나니 어떤 아이템을 해도 감정 이입이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김태호 피디도 2007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무한도전>이 먹히기 시작한 것은 멤버 각자에게 캐릭터가 부여되면서부터”라며 “평균 이하의 그들이 울고, 웃고, 다투기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이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 13년간 매회 새로운 아이템 놀라워 매회 새로운 포맷을 선보이는 실험 또한 ‘무한도전’이었다. 나영석 피디는 “10년 넘게 매회 다른 아이템을 선보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프로그램은 하나지만 쇼, 게임, 여행 등 모든 장르를 소화하며 사실상 매주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같다”며 “<무한도전>은 말 그대로 무한도전이었다”고 말했다. <무한도전>은 ‘무모한 도전’을 포함해 610여개의 아이템을 내보냈다. 때 밀기, 신년 운세 보기 같은 시의성 있는 아이템부터 좀비, 우주 등 실험적인 시도도 많았다. 나영석 피디는 “가요제 등 여러 장기 기획 프로젝트를 보면 ‘저런 소재로도 예능이 될 수 있구나’라는 걸 입증했다. 사실상 안 해본 포맷이 없으니 장르가 다른 피디들에게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김태호 피디는 2007년 당시 인터뷰에서 “아이템을 선정할 때 한회 한회를 보지 않고 전체의 흐름을 본다. 아무리 좋은 소재도 흐름에 맞지 않으면 포기한다”고 말했다.

2005년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
13년간 리얼 예능 흐름 주도
31일 ‘사실상 종영’

이런 다채로운 시도들 덕분에 <무한도전>은 예능으로는 이례적으로 충성도 높은 고정팬층을 확보했다. 주로 10~20대 시청률이 높다. 박상혁 피디는 “보통 예능은 그날의 내용에 따라 시청률이 좌우되는데, <무한도전>은 프로그램 자체에 애정을 갖고 있는 팬층이 두텁다. 예능도 팬덤을 형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달력에 피규어, 응원봉이 나오고 음원을 제작하는 등 기존 예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이돌 뺨치는 ‘굿즈’가 쏟아졌다. 판매 수익금만 약 63억원으로, 모두 기부했다.

■ <무한도전> 잡으려다가…포맷 다양화 <무한도전>은 독립편성된 2006년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평균시청률은 16.4%(티엔엠에스 집계). 2008년 19.3%에서 2012년 16.6%, 지난해 11.4%로 갈수록 줄어든 추세지만 고정팬층이 두터운데다 모바일과 다시보기로 보는 이들이 많아 사실상 꾸준히 높은 인기를 누려왔다.

“장기기획 등 안해본 포맷 없어…
시청률은 물론 팬덤까지 독보적”
타 방송사 편성전략에도 영향
‘예능의 한 시대’ 상징으로 남아

10년 넘게 중심이 되어 왔으니 다른 방송사에서는 <무한도전>이 넘어야 할 산이기도 했다. 피디들이 <무한도전>과 맞붙는 시간대 연출을 꺼렸다는 얘기도 있다. <무한도전>이 한창 폭발적이던 때 <라인업>을 연출한 박상혁 피디는 “당시만 해도 <무한도전>과 비슷한 포맷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프로그램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라인업>도 그래서 탄생했다. 하지만 유사한 형식으로는 답이 안 나오자, 이후 방송사들은 전략을 바꿨다. <무한도전>의 고정팬층을 피해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삼은 보편적인 콘텐츠를 선보인 것이다. <한국방송>은 노래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을 내놓았고, <에스비에스>는 장기를 가진 사람들을 소개하는 <스타킹>으로 승부수를 던져 성공했다. 현재 <에스비에스>도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백년손님-자기야>를 편성중이다.

결국, <무한도전>의 경쟁이 포맷의 다양화를 갖고 온 셈이 됐다. 요일은 달랐지만 ‘토요일 <무한도전>-일요일 <1박2일>’로 예능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며 끊임없이 비교됐던 나영석 피디는 “우리는 서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언론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했다”고 웃으며 “그런 큰 프로가 주변에 있다는 게 오히려 기뻤다. <무한도전>이 너무 잘나가니까 우리는 조심조심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 <무한도전> 이후 예능 판도는? 예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선보이니 <무한도전>은 후배들에게 예능의 교과서로도 불린다. 박진경 피디는 “<무한도전>은 예능의 핵심 노하우를 알 수 있는 교과서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김태호 선배에게 직접 받았던 피드백은 우리들 만의 쪽집게 핵심 정리 노트 같은 느낌이었다”며 “<무한도전>으로 예능이 무엇인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무도 이후 토요일은 ‘춘추전국시대’
바뀐 시청 방식·제작 환경에서
김태호 피디 ‘새로운 도전’도 기대

이들은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은 앞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데 아쉬움을 드러낸다. <무한도전>이 자리잡을 당시는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같은 톱엠시 위주의 시절이어서 프로그램이 한동안 침체돼도 믿고 기다려줬지만, 기획이 중요해진 지금은 8부작, 10부작 등 시즌제로 가고, 파일럿으로 준비하는 프로도 많아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바로 폐지”(박상혁 피디)되는 탓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의 종영은 예능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박진경 피디는 “<무한도전>이 이제는 그리운 모교의 느낌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무한도전> 이후 예능의 판도에 주목하기도 한다. 벌써 발빠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모 방송사에서는 같은 시간대 새 예능에 강호동을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티브이엔>도 <서울메이트>를 <무한도전>이 종영하는 날 같은 시간대로 옮긴다. 이명한 본부장은 “지금의 관찰예능이 2~3년간 계속되다가 판도가 다시 바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피디들은 무엇보다 김태호 피디가 어떻게 돌아올지가 가장 궁금하다고 했다. 이명한 본부장은 “저 사람이 <무한도전>의 틀 밖으로 나오면 또 우리에게 얼마나 새로운 걸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린다”고 말했다. 박상혁 피디는 “동료 피디로서 다양한 미디어 환경에서 또 한번 예능의 판을 바꿀 수 있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뭔가를 보여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무한도전>은 29일 마지막 녹화를 한다. 이후 한동안은 ‘스페셜 방송’으로 채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무한도전> 저마다의 베스트 에피소드5

<무한도전>은 독립편성된 2006년부터 총 560여개의 아이템을 선보였다. 모두 다 웃고 울렸지만, 그중에서 어떤 것들이 인상적이었을까. 다양한 측면에서 꼽았다.

■ 포털 검색 빈도―496회 무한상사 네이버 집계 결과 ‘무한도전’으로 가장 많이 검색됐던 회차는 2016년 9월3일 방영한 ‘무한상사―위기의 회사원’ 편이었다. 장항준 감독이 연출하고, 김은희 작가가 집필한 대본을 김혜수, 이제훈, 지드래곤 등이 출연했다. 웃음기 뺀 영화 같은 작품에 시청자들이 매료됐다.

■ 최고 시청률―88회 이산 특집 30.4%(티엔엠에스 집계)로 가장 사랑받은 아이템은 출연진의 배우 도전기였다. 드라마 <이산>에서 보조출연자로 등장했다. 행인, 가마꾼, 길거리 취객 등 대사 한줄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호기심과 웃음을 안겼다.

■ 무도팬 인증―‘무모한 도전’ 2회 전철과 달리기 대결 전공인 요리만큼 <무한도전>을 좋아한다는 박미향 <한겨레> 요리 전문 기자이자, ESC 팀장은 초심을 기억했다. ‘무모한 도전’ 시절인 2005년 4월30일 기차와 100m 대결을 보고 팬이 됐다. 기차를 이겨보겠다니,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기획 자체가 신선했다.

■ 최다 출연자 중 한명―지디 김제동 등 여러 게스트가 프로그램을 빛냈지만, 지드래곤의 활약이 거셌다. 2011년 ‘가요제 디너쇼’를 시작으로, 6개 아이템, 회차로 치면 21편에 등장했다.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뿐 아니라 ‘무한상사’에서는 연기력도 빛났다.

■ 최저 시청률―5회 월드컵 특집 시청률이 중요할까. 무한의 도전 자체가 감동이지. 2006년 6월3일 방송분은 7.1%로 <무한도전>으로 이름 바꾼 이후 성적은 그닥 좋지 않았지만, 그래서 다시 봐야 할 아이템이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월드컵 특집으로 민첩성 훈련 등을 하는 멤버들의 몸개그를 다시 볼 수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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