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보컬은 스타의 그림자 같은 존재다. 스타와의 거리는 몇 발자국에 불과한데 스타와 백보컬 사이에는 넓은 바다가 놓여 있다.
티나 터너, 스팅, 비욘세, 롤링 스톤스, 루서 밴드로스 등 세계적인 팝 뮤지션들의 백보컬이었던 리사 피셔(50)도 그 바다를 건너 무대 앞에 서기까지 30여년이 걸렸다. 4옥타브를 넘는 가창력과 감미로운 목소리로 스타들의 음악을 돋보이게 했던 그는 2014년부터 무대 중심으로 나와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는 4월1일 서울 엘지아트센터에서 첫 내한공연을 한다. 그와 전자우편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백보컬로 노래하는 것은 마치 누에가 실을 토해 몸을 감싸는 것처럼 스타의 노래와 음악을 한 겹 감싸주는 일이에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이 작업을 사랑했어요.”
피셔가 백보컬을 시작한 건 1980년대 초반이다. 30여년간 백보컬을 하면서 가장 오래 함께한 이는 아르앤비 가수 루서 밴드로스(1951~2005)다. 무려 22년간 그의 백보컬을 맡았다. “루서 밴드로스는 지혜롭고 화음에 대한 아이디어가 풍부한 뮤지션이에요. 저에게 음악적인 감성과 세심함, 그리고 오랫동안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죠.”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백보컬로 이름을 높이면서 피셔는 백보컬 생활 10여년 만에 개인 앨범을 낼 기회를 잡았다. 1991년에 낸 첫 앨범 수록곡인 ‘하우 캔 아이 이즈 더 페인’(How Can I Ease the Pain)이 크게 사랑받아 성공적인 데뷔식을 치렀다. 이듬해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여성 아르앤비 퍼포먼스상’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2집 앨범 녹음이 성사되지 않으면서 다시 백보컬로 돌아가야 했다. “두 번째 앨범을 만들던 음반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이 되면서 앨범 계획이 흐지부지됐어요. 상심이 컸죠. 그래서 다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백보컬로 돌아갔어요.”
몇 발자국 되지 않지만 과거의 자리로 돌아가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조명의 온도가 곧 현실의 차가움이기 때문이다. 이런 피셔의 드라마틱한 여정은 다큐영화로 만들어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와 다른 백보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2013)이 오스카와 그래미상 등을 받으면서 피셔는 다시 무대 중심에 서게 됐다. 벌써 5년째 전세계를 다니며 자신만의 공연을 여는 중이다. 오직 노래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지탱해온 긴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저에게 노래는 나누는 것이에요. 제게 가장 중요한 건 특별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죠. 제 천직은 노래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