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의 부인 이수자(오른쪽), 딸 윤정씨가 통영시 용남면에 있는 자택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통영/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3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지난달 23일 독일 베를린 가토 명예 묘지에 잠든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깨우던 날, 윤이상의 딸 윤정(67)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장식에 참석한 이들이 인사말을 할 동안 그저 묵묵히 아버지가 묻혀 있는 땅을 바라봤다.
지난 8일 경남 통영시에 있는 자택에서 만난 윤정씨는 독일에서 잠든 아버지를 깨우던 날의 침묵에 대해 들려줬다. “가토 묘지는 아버지가 직접 고른 곳이었어요. 아버지가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좋아해 묘지 제일 안쪽 구석자리에 묘소를 썼어요. 그런데 엄마랑 제가 한국으로 오면서 아버지가 혼자 남아 있게 되니까 너무 쓸쓸해 보이고 미안하더라고요. 이제 고향으로 모시게 되니 정말 기뻐 말이 필요 없는 특별한 날이었어요.”
윤이상의 귀향은 지난해 여름께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통영시의 노력과 윤이상의 아내 이수자(91)씨가 베를린시에 보낸 간곡한 편지가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지난달 25일 통영시청에서 남편의 유골함을 받아든 이씨는 “여보, 고향 땅에 돌아온 걸 축하해요. 이제 소원하던 대로 바다 바라보면서 편하게 쉬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유골함에 다정하게 입도 맞췄다. 그렇게 돌아온 윤이상의 유해는 현재 통영시추모공원 봉안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아버지의 모든 음악을 좋아한다”는 윤씨가 특히 좋아하는 곡은 아버지의 마지막 작품인 ‘화염 속의 천사’(1994)다. 이 곡은 1991년 강경대 죽음 이후 학생들의 잇따른 분신 사태에 윤이상이 충격을 받아 만든 곡이다. 윤이상은 ‘예악’ ‘바라’ 같은 연주곡 외에도 ‘화염 속의 천사’, ‘광주여 영원히’ 같은 역사의 아픔을 담은 곡을 만들었다. “아버지가 거동도 힘들 만큼 엄청 아프셨을 때였어요. 그런데도 이걸 못 쓰면 죽지 못한다고 하면서 끝내 이 곡을 완성하고 돌아가셨어요. 저는 연주자들이 아버지 음악을 잘 표현해주면 마치 아버지가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무척 행복해요.”
윤이상의 유해는 그를 기리는 음악제인 통영국제음악제가 개막하는 30일에 맞춰 이장할 계획이다. 묘소는 자연석 묘비만 세우고 소박한 추모의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묘비는 독일에서와 똑같이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고인을 뜻하는 글귀를 새긴다. ‘진흙탕 속에 피어나도 더러운 흙탕물에 묻히지 않는다’는 불교 경구다. 이씨는 “당시 설정 스님(현재 조계종 총무원장)이 써주셨는데 이번에 한국에 세우는 묘비에도 똑같이 글씨를 써주셨다”고 말했다.
“아버지 혼이라도 쉬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2010년 통영에 정착한 윤씨는 “이제 다른 사람들처럼 명절에 찾아가 제사 지내고 수시로 아버지와 얘기 나눌 수 있게 됐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통영/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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