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성추행’ 폭로에 대한 고은 시인의 공식 성명을 보도한 영국 일간 <가디언> 기사의 앞부분.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고은(85) 시인이 “부끄러울 행동을 한 적이 없고, 집필을 계속할 것”이라는 첫 공식입장을 내놨다. 고은 시인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영국 내 출판권을 갖고 있는 블루댁스 북스 출판사에 이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입장을 밝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가디언은 “출판사의 (고은 시인 출판물 담당자인) 닐 애슬리가 가디언에 고 시인의 성명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고 시인은 성명에서 “최근 (성추행) 주장들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것이 유감스럽다. 나는 이미 ‘나의 행동으로 (피해자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고통을 준 것을 뉘우친다’고 밝힌 바 있다”며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상습적인 추행’ 혐의는 단호하게 부인한다”고 밝혔다.
고 시인은 이어 “진실이 밝혀지고 논란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며 “사실과 맥락을 쉽게 알기 어려운 외국인 친구들에게 ‘내 자신과 아내에게 부끄러울 일을 한 게 전혀 없다’는 걸 확인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 인간이자 시인으로 내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나의 집필 활동도 계속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해 12월 최영미 시인은 계간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물’에서 고은 시인의 성희롱을 폭로하면서 ‘미투 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고은 시인은 지난달 초 <한겨레>와 통화에서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밝혔다. 본인에게 쏟아진 성 추문에 대해 국내에서 밝힌 유일한 입장이었다. 그 뒤로 일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언론과의 접촉도 끊었다가 한달만에 외국 출판사와 언론을 통해 유감, 떳떳함, 집필 활동 의사를 밝힌 셈이다.
<가디언>은 영국쪽 출판사 닐 애슬리의 말을 인용해 “지난달 고은 시인이 종양 치료를 위해 입원했으며, 현재 회복 중이긴 하지만 수술과 대중적인 비난 때문에 신체적으로 쇠약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애슬리는 “지금까지 한국 언론 보도들은 한 사람의 주장에만 근거를 둔 채 입증되지 않은 논평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며 “이 모든 사태에 대한 한국에서의 반응은 고은 시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빼고 작가로서 누려온 평판을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등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번 스캔들에 이은 (고은 시인의) 명망의 추락은 부분적으로 그가 유명인이라는 지위, 그리고 어느 작가보다도 서방에 잘 알려져있다는 찬사에 대한 역반응”이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한편 고은 시인의 성명 내용이 나온 뒤인 4일 오후 최 시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괴물에 대해 매체를 통해 한 말과 글은 사실입니다. 나중에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기구가 출범하면 나가서 상세히 밝히겠습니다"라고 썼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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