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선보인 <지하철 1호선>의 한 장면. 오른쪽 황정민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극단 학전 제공
‘<지하철 1호선>을 했다’는 건 배우한테는 연기력 인증서와도 같다. <지하철 1호선>은 1994년부터 2008년까지 15년간 4000회 이상 무대에 오르며 관객 71만명을 불러모으는 등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연기와 노래에 엄격한 김민기 학전 대표가 선발하기 때문에 실력 있는 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황정민, 방은진, 오지혜, 장현성, 설경구 등 굵직한 배우들이 모두 <지하철 1호선>으로 성장했다. 소극장 뮤지컬에 라이브 연주를 도입하는 등 해외 뮤지컬이 주를 이루던 당시 한국 공연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지하철 1호선>의 무대의상은 2011년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 경이로운 작품이 10년 만에 다시 공연된다. 김민기 대표는 26일 밤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올해 9월부터 12월까지 100회 한정으로 <지하철 1호선>을 다시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하철 1호선>은 연변 아가씨 ‘선녀’의 눈을 통해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을 지하철 1호선이라는 공간에 축소해 풍자와 해학을 담아 그린다. 독일의 동명 뮤지컬이 원작이지만, 김 대표가 한국 상황에 맞게 번안하고 연출했다. 김 대표는 “내용은 그대로인데 노래를 정재일 음악감독이 새롭게 편곡한다”며 “1997~1998년이 배경인데 딱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한국인의 삶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돌아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늘 그랬듯, 모든 배역은 오디션으로 결정한다. <지하철 1호선>은 1995년부터 전 배역을 공개 오디션으로 선발하며 많은 이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으로 높게 평가받기도 했다. 그는 “이번에도 학생, 다른 극단 등 모든 이들에게 기회는 열려 있다”며 “과거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한 배우들은 ‘게스트'라는 이름으로 주말 공연에 한해 단역으로 출연 기회를 줄 예정이지만, 이 역시 오디션을 봐야 한다”며 웃었다. 27일 누리집 등에 오디션 일정을 공개했다.
잘 달리던 지하철 1호선은 지난 2008년 4000회 공연을 끝으로 돌연 멈췄다. 관객이 줄어서도 아니었다. 그는 2015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공연을 중단한 이유에 대해 “당시 매표 수입이 100억원(누적)을 넘겼을 것”이라며 “돈만 벌다 보면 돈 안 되는 일을 못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돈 되는 대신 아이들이 갈 곳이, 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청소년, 아동극에 10년 이상 매진해왔다. 그랬던 그가 지하철 1호선의 엔진을 다시 켠 이유는 극단 학전의 재정비와 관련 있다. 그는 “모든 작품이 정리가 되어야 학전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며 “2~3년은 신작 대신 학전 작품 총 15개 중 (아직 더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기존 9개 작품을 총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학전의 시발점인 <지하철 1호선>을 시작으로, 다른 작품들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1994년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한 배우 겸 영화감독 방은진은 “영화계와 연극계에 학전 식구들이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웃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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