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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고현정의 ‘리턴’ 중도하차가 말해주는 것들

등록 2018-02-09 19:52수정 2018-02-11 14:33

[토요판-친절한 기자들]

에스비에스 드라마 <리턴> 화면 갈무리.
에스비에스 드라마 <리턴> 화면 갈무리.
남지은 문화에디터석 대중문화팀 기자 myviollet@hani.co.kr

안녕하세요. <한겨레>에서 방송연예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남지은 기자입니다. 7일 밤 일어난 <리턴> 사태로 지금 방송계가 뜨겁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주연배우 고현정과 담당 연출자 주동민 피디가 촬영 초기부터 마찰을 빚었고, 갈등이 깊어졌고, 급기야 5일에는 언쟁이 벌어졌고, 고현정이 촬영 도중 가버렸고, <에스비에스>가 하차를 통보했다.’ 한마디로 피디와의 갈등으로 배우가 ‘잘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고현정이 피디를 폭행했다느니, 방송사의 갑질이라느니 온갖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까 양쪽 모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어 정확한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취재를 통해 파악한 사태는 대략 이렇습니다.

고현정이 분량에 불만을 품고 항의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고현정은 김혜자, 윤여정 등 어른들 8명이 주인공인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도 비중이 작았습니다. 선배들을 받치는 인물이지만 최선을 다했고, 잘했습니다. 또한 이미 대본이 4회 이상 나온 상황에서 <리턴> 출연을 결정했기에 분량 운운은 신빙성이 적습니다. 두 사람의 마찰은 캐릭터 해석과 방향성의 차이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현정이 설정인지, 의욕이 없는 것인지, 구분이 애매할 정도의 연기를 한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피디가 설정을 바꿀 것을 제안했지만, 고현정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불씨가 되어 이 사달까지 난 것으로 보입니다. 고현정이 피디와의 갈등에 불만이 쌓여 촬영 현장에 늦게 나오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고, 제작진은 이를 포함해 고현정의 기존 요구사항들까지 언급하며 ‘갑질’이라고 문제 삼았습니다. 고현정이 피디를 폭행했다는 5일 상황에 대해서는 화가 난 고현정이 피디를 밀친 정도였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고현정과 갈등이 깊어진 제작진이 먼저 다른 배우를 물색한 뒤 하차를 통보했다더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리턴> 사태는 진실여부, 잘잘못을 떠나 굉장히 상징적인 지점이 많습니다. <에스비에스>가 톱스타인 고현정을 하차시켰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그동안 방송사는 톱스타들 앞에서는 ‘을’이었습니다. <겨울연가> 이후 한류열풍이 불고 외주제작이 일반화되면서 드라마는 산업이 됐습니다. 주연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투자와 국외 판매가 달려 있기 때문에 방송사들은 앞다투어 톱스타를 모셔왔습니다. 고현정 앞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 <에스비에스>는 고현정을 <대물>에 출연시키려고 온갖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리턴>에 출연시키려고 고현정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줬습니다. 그랬던 방송사가 고현정에게 하차를 통보한 것은 앞으로 함께 일하지 않아도 좋다는 선전포고와도 다름없습니다.

방송사는 왜 갑자기 용감해졌을까요? 드라마의 국외 판매가 줄고 광고도 잘 안되는 몇년 전부터 스타 배우나 작가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비밀의 숲>에서처럼 신인 작가가 큰 성공을 거두고, <슬기로운 감빵생활>처럼 ‘비싼 배우’가 출연하지 않아도 화제를 모을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톱스타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을’로 눈치보면서까지 계속 참지는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방영분까지 고현정의 비중이 작았기 때문에 하차 통보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방송사의 비겁함도 보입니다. <선덕여왕>의 ‘미실’처럼 고현정이 모든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과연 중도 결별이 가능했을까요. <에스비에스>는 방영 전부터 고현정을 내세워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고, 광고도 팔았습니다.

<리턴> 사태에서 주목할 지점은 또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고현정이 아닌 방송사를 비난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전 같으면 연예인이 촬영 현장에 늦게 나타나 스태프들을 기다리게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리턴>에서는 비난의 화살이 방송사로 향합니다. ‘제작진이 뭔가를 잘못했으니 배우가 그랬겠지’라고 시청자들이 각자 판단하는 것이죠. <에스비에스>뿐 아니라 타 방송사 피디들도 이 지점에서 놀라고 있습니다.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에, 최근 불거진 피디 성추행 사건 등까지 겹치면서 방송사의 신뢰가 바닥을 쳤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리턴> 사태가 우리를 각성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피디들 사이에서도 나옵니다.

이것저것 떠나 이 사태의 피해자가 시청자라는 건 분명합니다. 두 사람의 갈등이 추위에 고생하는 스태프들의 노력을 얼어붙게 만들고, 다른 배우들의 열연도 퇴색시켰습니다. 무엇보다 본방사수 해가며 시청률을 17%까지 올려준 애청자들에게 실망을 안겼습니다. 배우와 방송사의 ‘충돌’ 틈바구니에서 드라마를 향한 시청자들의 애정도 싸늘히 식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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