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명창 안숙선(오른쪽 둘째)과 첼리스트 정명화(왼쪽)가 ‘평창 흥보가’를 세계 초연하고 있다. 평창겨울음악제 제공
“여기 오신 여러분들, 흥부처럼 복 받으시고 평창올림픽 대박 나소~.”
지난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평창겨울음악제’의 막이 올랐다. 판소리 명창 안숙선이 ‘평창 흥보가’를 멋들어지게 뽑아내자 숨죽이며 무대를 지켜보던 관중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안숙선과 첼리스트 정명화, 피아니스트 김태형, 장구 조용수가 함께한 신명 나는 무대에 객석도 흥이 올랐다. 휘모리와 자진모리를 오가는 자유로운 장단에 객석에 앉은 청중들의 고개가 까딱까딱 움직였다.
평창 흥보가는 임준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판소리 ‘흥보가’ 중 박 타는 대목을 편곡해 만들었다. ‘시구시구 시르렁시르렁’ 박을 타는 활기찬 톱질 소리를 묘사하기 위해 정명화는 높낮이가 다른 두 음을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글리산도’, 짧게 음을 끊어치는 ‘스타카토’ 등 첼로의 폭넓은 용법을 보여줬다. 피아노와 장구는 분위기를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며 판소리에 감칠맛을 더했다. 한국 음악에 담긴 해학과 유머가 서양 악기와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맛을 보여준 무대였다.
이날 3시간(인터미션 포함) 동안 이어진 개막 공연은 평창 흥보가 외에도 ‘실내악과 댄스’라는 부주제에 맞춰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무대를 꾸몄다. 안무가 김유미가 하이든 ‘피아노 삼중주 에프 장조’와 마스네 ‘타이스 중 명상곡’을 바탕으로 각각 ‘아이리스’와 ‘쉴 사이 없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창작 안무를 세계 초연으로 선보였다. 1막 마지막에 선보인 스페인 댄서 벨렌 카바네스가 4대의 첼로 연주로 편곡된 라벨의 ‘볼레로’에 맞춰 선보인 춤도 압권이었다. 송영훈, 문태국, 고봉인, 박상민 4명의 첼리스트가 악기를 두드리고, 활을 켜고, 현을 퉁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첼로를 연주하면서 춤을 돋보이게 했다.
남아프리카 태생의 비올리스트이자 배음 성악가인 개리스 루브가 뱃속 깊은 곳에서 소리를 끌어내며 악기를 연주하는 ‘우분투’ 독주 무대도 세계 초연이다. 류태화 클래식 평론가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성찬”이라며 “특히 평창 흥보가는 판소리라는 장르를 클래식 팬들도 함께 즐길 기회를 제공해 뜻깊었다”고 말했다.
음악제는 2월16일까지 서울과 원주, 강릉, 춘천 등지를 오가며 열린다. 오페라 갈라콘서트, 재즈콘서트, 클래식콘서트 등 총 8회의 무대가 각기 다른 형식으로 꾸며진다. 올해 겨울올림픽이 열리면서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서울에서 선보인 지난 30일과 31일 공연은 2월2일과 3일 강릉아트센터에서 거의 유사하게 재현될 예정이다. 음악제는 16일 강릉아트센터에서 막을 내린다. 폐막 공연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손열음, 지휘자 성시연과 현대음악 전문단체인 팀프(TIMF) 앙상블이 함께 만드는 ‘협주곡의 밤’이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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