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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떠난 진은숙 “의사 표현할 자유 없어 힘들었다”

등록 2018-01-25 14:02수정 2018-01-26 15:08

작곡가 진은숙, 상임작곡가 사임 뒤 첫 인터뷰
<허핑턴포스트>에 “밝힐 수 있는 진실 다 얘기”
“지난해 9월 사임 결정…이유는 복합적
시향 위해 기부금 내고 무보수로 일하기도
시향, 예산 등 감사 필요하나 정쟁 도구 안돼”
진은숙 작곡가. 한겨레 자료사진
진은숙 작곡가.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2일 “서울시향을 떠난다”는 이메일 한통을 남기고 시향의 상임작곡가 자리를 돌연 사임한 진은숙 작곡가가 자신과 시향을 따라다니는 온갖 오해를 해명하기 위해 직접 입을 열었다.

진 작곡가는 2004년 그라베마이어상, 2005년 아놀드 쇤베르크상 등을 수상한 세계 유명 작곡가다. 지난 12년간 서울시향에서 상임작곡가로 활동했으며, 2016년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과 함께 물러난 마이클 파인 공연기획자문역을 대신해 기획자문 일을 1년간 맡기도 했다. 시향에서 일하는 동안엔 정명훈 감독과 고액연봉, 특혜 논란 등에 시달려왔다.

사임 이후 여러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던 그는 24일 밤 음악애호가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또 섣부른 인터뷰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 인터뷰에 바로 응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사임 후에도 많은 추측성 글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저를 12년간 성원해주신 분들께 자세한 설명해 드리는 게 예의라 생각해 <허핑턴포스트>와 서면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다.

그가 <허핑턴포스트>에서 밝힌 사임 이유는 길고 복잡하다. A4 용지 14장에 이르는 장문의 인터뷰를 한 그는 “지금 시점에서 밝힐 수 있는 모든 진실을 다 얘기했다”고 말했다.

진은숙 작곡가. 한겨레 자료사진
진은숙 작곡가. 한겨레 자료사진
인터뷰를 보면 사임 발표는 돌발적이었지만 즉흥적인 결정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9월경에 시향을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을 감지하고, 11월(베를린 필과의 공연)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아무도 모르게 신변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시향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극도로 복합적”이라면서 “공연기획자문과 상임작곡가로서의 계약이 각각 9월 말과 12월 말로 종료됐다. 계약 연장을 비롯해 앞으로의 거취를 논의하고 결정할 권한이 있는 대표이사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닌 비판 중 하나가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노바’가 대중적 인기를 모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반 청중에게 폭넓게 현대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젊은 작곡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만들어 줬다”고 스스로 평가하지만 서울시의회 등은 관객이 많지 않은데 예산을 낭비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진 작곡가는 “서울시향에서의 일이 나에게는 ‘책임’과 ‘의무’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권력’과 ‘특혜’인 것”이라며 “인식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에 관해 토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밝힌 상임 작곡가로서의 계약 내용을 보면 “아르스노바 전반에 걸친 기획과 감독, 마스터클래스 진행, 초상권과 모든 작품에 대한 아시아 초연 또는 한국 초연 독점권을 시향이 가짐”이라고 돼 있다. 그는 자신이 돈과 상관없이 시향에 대한 애정으로 일을 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계약서에는 상임작곡가 활동에 필요한 기타 경비를 시향에 요구할 수 있지만 12년간 한번도 요청 없이 개인 부담했다. 2013~2015년 3년간은 외국 오케스트라와 공동위촉 사업 예산이 책정되지 않는 바람에 한 문화재단이 나에게 제공한 활동비 전액을 시향에 기부했다”고도 밝혔다. 그가 밝힌 기부금액은 총 1억5000만원이다. 기획자문역을 겸임할 때 역시 “처음 3~4개월 동안은 무보수 자원봉사를 했다”고 말했다.

진은숙 작곡가(가운데). 한겨레 자료사진
진은숙 작곡가(가운데). 한겨레 자료사진
상임작곡가면서 악단을 위해 곡을 쓰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내 계약에는 곡 쓰는 것에 대한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고, 나는 서울시향이 나에게 작품 위촉을 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향에 위촉 예산이 없을 뿐더러 ‘셀프 위촉’을 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서울시향이 정쟁의 도구로 활용된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서울시향을 둘러싼 ‘정치화된 공방’ 속에서 진정으로 이 단체를 위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그 과정에서 얻는 개인적 이득이 정치적 행동의 유일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서울시향이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감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감사는 전문성과 공정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와는 별개로) 예산을 받아쓰는 기관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말로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서울시향의 건설적인 관계 정립을 바랐다.

진은숙 작곡가. 한겨레 자료사진
진은숙 작곡가. 한겨레 자료사진
무엇보다 한국에서 일하며 그를 가장 힘들 게 한 건 “사고방식의 차이”였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없다는 것이 힘들었다”는 진 작곡가는 “공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문제 제기나 비판도 항상 감정적 차원에서 비상식적으로 행해졌다”고 말했다.

시향을 떠나고 다 큰 아들도 독립하게 되면서 모든 책임과 의무에서 해방됐다는 그는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향을 떠난 지금의 나에겐 그 시간이 너무도 충만하고 행복한 기억”이라면서 앞으로는 작곡 활동에 매진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서울시향은 예술감독, 대표이사, 상임작곡가, 공연기획자문까지 모두 공석으로 리더십 부재 상황에 우려가 크다. 이에 대해 진 작곡가는 “조만간 새로운 대표이사가 선임될 것이고 이런 상황은 오히려 과거의 잔재 없이 새로운 미래를 쌓아나갈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서울시향이 이 과도기를 잘 극복하고 발전해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시향의 앞날을 응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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